경희대 대학원 김준호씨 學而露宿之면 不亦說乎아

동아일보 입력 2010-09-11 03:00수정 2010-09-1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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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일간 노숙생활하며 노숙인 주제 석사논문
김준호 씨가 9일 경희대 지리학과 대학원 연구실에서 노숙인 체험을 토대로 작성한 자 신의 석사학위 논문을 펼쳐 보이고 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지난겨울 서울역 노숙인들 사이에 한 젊은 노숙인이 있었다. 40, 50대 노숙인과 부대끼며 70여 일을 보낸 ‘20대 노숙인’은 지금 이렇게 얘기한다. “거리 노숙인을 그저 무능력하고 의지가 결여된 존재나 불쌍한 사람으로만 바라보는 기존 시선에 대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9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지리학과 대학원 연구실에서 만난 김준호 씨(29)는 올해 1월 1일부터 3월 13일까지 72일 동안 석사학위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했다. 이 기간에 김 씨가 ‘생명의 위협’을 느껴 집에서 잔 기간은 5일에 불과하다. 김 씨는 서울역에서 노숙인 체험을 마친 후 ‘거리 노숙인이 생산하는 차이의 공간에 대한 연구-서울역 거리 노숙인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을 완성해 지난달 경희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노숙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었다. 노숙인에 대한 기존 연구를 찾아봤지만 연구자 신분으로 설문지 작성이나 구술면접을 통해 작성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김 씨는 쉼터나 보호시설 관계자들의 얘기를 듣기보다 직접 그들의 세상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노숙인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녹음기나 카메라를 가져갈 수 없었다. 화장실에 숨겨놓은 노트에 3, 4일에 한 번씩 기록을 하며 쪽잠을 잤다. 가족에게는 공중전화로 ‘살아있음’을 알렸다. 설날 무렵에는 다른 지역에서 건너온 노숙인들과 구호품을 받으려다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자신이 성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노숙인들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두 시간 겨우 눈을 붙이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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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서울역의 노숙인 ‘최형’ ‘코트누나’ ‘김간지’ 등과 나눈 대화와 일상생활을 분석해 논문에 실었다. 그가 72일 동안 만난 노숙인은 총 80여 명에 이르고 이 중 8명의 노숙생활을 집중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자본주의의 틀에 편입되지 못한 노숙인을 일반 시민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회에 시각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물꼬를 트고 싶었어요.” 그는 논문에서 단지 노숙인이기 때문에 공공 공간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비판했다. 시민들이 집회를 하고 공연을 하는 공공의 공간이 노숙인에게는 주류 사회가 만들어낸 ‘지배의 공간’이 돼 버렸다고 분석했다. 그는 논문에서 “노숙인은 시도 때도 없이 구걸하거나 잠만 자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의 방식대로 공공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공공 공간에서 권리를 찾지 못하는 노숙인을 위한 실천적인 대안을 찾지 못한 부분은 한계”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서울역을 떠난 이후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함께 지낸 노숙인들을 다시 찾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행여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 봐 걱정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사회적 소수자가 공공 공간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지 연구를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김 씨는 노숙생활을 끝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지금껏 제 잣대만으로 노숙인을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게 가장 죄스러웠어요. 그저 그들은 우리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뿐이에요.”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동영상=노숙인이 파는 길거리 잡지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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