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존을 향해/1부]<4>정치, 민심과 通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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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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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유권자-초선 국회의원-원로정치인-정치학자-여론조사 전문가 릴레이 인터뷰

《정치의 본래 기능은 엇갈리는 이해(利害)를 조정하고 갈등을 완화하는 것이다.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싸우지 않고 공존하며 살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치가 오히려 갈등의 진원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정책 차원에서는 충분히 타협 가능한 문제도 정치색이 덧칠되는 순간 파국으로 치닫는다. 국민의 삶과 무관한 정쟁(政爭)으로 날을 새운다. 민심과 따로 노는 정치에 대해 선거 때면 국민들은 호된 회초리를 들곤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멀쩡하던 사람도 국회에 들어가기만 하면 ‘새 피’가 아니라 소속 정당의 행동대원이 돼 육탄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충실한 심부름꾼이 되겠다”는 선거 때의 약속은 간데없다. 한국에서 정치는 ‘공존과 소통을 막는 주범’이 돼버렸다. ‘성숙한 사회’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정치권이 ‘국민 불신 1순위’를 벗어날 길은 없을까. 평범한 유권자의 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초선 정치인, 원로정치인, 정치학자, 여론조사 전문가의 고언을 들어봤다.》


■ 이래서 불신한다
- 곽상탄 씨(30·현대자동차 직원)
민심 읽는 노력은 없이
싸울 건수만 찾아다녀
고객 모니터링 좀 하라


정치권은 정책이나 인물보다 ‘선정적 이슈’를 띄워 승부하려고 한다. 7·28 재·보궐선거만 봐도 그렇다. 야당은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 파문을 어떻게든 선거에 이용하려 하고 여당은 맞불 놓을 거리만 찾고 있지 않나. 또 장기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늘 단기 이슈에 매몰돼 정쟁만 벌인다.

정치권이 바뀌려면 공천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지금은 공천 기간도 너무 짧고 검증도 안 된다. 공천 후보군을 선거 1, 2년 전 내놓고 지역사회에서 이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본 다음 공천을 했으면 좋겠다.

배우는 특정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 노숙인도 돼 보고, 장애인도 돼본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국민의 삶과 밀착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정치인들은 여러 모임에 참석하지만 대부분 친분이 있는 소수의 사람만 만나지 않는가. 고객의 마음을 읽기 위해 수시로 고객 모니터링을 하는 기업에 배워야 한다.

정치권이 침묵하는 다수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들에게 관심도 없다 보니 정당은 민심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이 아닐까.

■ 우리도 반성한다 - 박선숙 민주당 의원(50)
정치, 정직해야 하는데
의원 개개인 소신까지
당론이란 이름으로 통제


곽 씨의 지적을 수용한다. 의원들은 당장 만나기 쉬운 ‘조직화된 소수’보다 ‘조직돼 있지 않은 다수’를 만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사실 쉽지 않다. 정치인은 ‘만나자는 사람’이 아니라 ‘만나야 할 사람’을 찾아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정쟁에 매몰된다는 지적이 있다. 행정부나 당 지도부가 주문사항을 당론이란 이름으로 의원들에게 강요한다. 의원들 개개인의 소신이 행정부(또는 당 지도부)에 직접 통제 받는다.

정치인은 좀 더 정직해져야 한다. 이슈나 쟁점이 나왔을 때 각자의 견해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언론이 의원들의 입법 활동은 잘 다루지 않고 정쟁만 크게 부각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도 반드시 투표해야 한다. 기권자의 의사는 누구도 대변해주지 않는다. ‘최선이 없다’는 이유로 기권한다면 낮은 투표율 때문에 민심이 왜곡돼 나타나는 ‘착시현상’이 생긴다.

정치권도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해석할 때 엄밀해야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현 정부는 4대강 사업의 반대여론은 보지 않고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50%대라는 사실만 보려 하지 않는가.

■ 이것은 명심하자 -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75)
공천 잘못해 놓고
올바른 선택 요구못해
다수결 원칙도 지켜야


여야가 공천을 잘못해 놓고 국민에게 올바른 선택을 요구할 수는 없다. 미국이나 유럽 의회를 보면 의원의 품위나 도덕성의 기준이 가혹하리만큼 엄격하다. 우리나라도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의원들이 가혹하리만큼 엄격하게 후보자의 자질과 도덕성을 따진다. 총리-장관 후보, 검찰총장 후보가 줄줄이 낙마했다. 그런데 국회는 어떤가. 여야 모두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지금까지 29년간 의정활동을 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데 비해 정치권은 계속 후퇴한 게 아닌가 싶다. 이번 18대 국회에선 급기야 폭력사태까지 빚어지면서 ‘폭력국회’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정치권은 여론을 제일 두려워해야 한다. 거역할 수 없는 게 여론이다. 과거 국회에서도 여야 정쟁이 극심했지만 이번 국회에선 지난 2년 동안 중요 현안을 두고 대화와 타협의 원칙도, 다수결의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제도 어려운데 서민생활이 아닌 정쟁에만 몰두한 것이다. 결국 민생은 돌보지 않고 정치적 현안만 갖고 극한 충돌을 하니 정치권이 지탄의 대상이 된 게 아니냐.

■ 어떻게 바꿀 건가 -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45·정치학)
계파공천부터 고치고
크로스보팅 보장해야
유권자도 적극 관심을


국회의원이 당론이나 계파의 논리가 아닌 독립적 입법기관으로 소신껏 행동할 수 있어야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박선숙 의원 말대로 크로스보팅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야 한다. 현재는 소속 정당의 규율이 지나치게 강하다.

공천 제도부터 바꿔야 한다. 계파 보스에 줄을 대서 공천을 받는 게 아니라 지역 당원과 국민의 뜻에 따라 공천해야 한다. 유권자 중심의 개방된 정당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상향식 공천이 활성화돼야 하며 정치 수요자인 국민이 평시에 당비를 내고 관심도 보여야 한다. 수요자가 제값을 치르지 않으면 좋은 정치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유권자의 참여를 유도하려면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구체적 정책을 내놓는 정책정당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면 유권자들이 정책에 관심을 갖고 정당의 의사결정 과정에도 참여하게 된다.

이와 함께 정치권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국회의원의 충원구조다. 국회의원들이 과연 국민의 대표인지, 엘리트 대표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는 전문성 강화라기보다 대표성 왜곡이다. 일반 시민들과 많은 차이가 나다 보니 정치인 불신도 커지는 것이다.

■ 민심 왜 못읽나 -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부소장(46)
여론조사 맹신하는데
민심은 보다 복합적
여론 이끌 생각을 해야


선거를 통해 표출된 민심을 정치권이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민심과 여론조사 결과를 혼동하는 일도 잦다. 사람들이 투표를 할 때는 당일 기분에 의해 하는 게 아니다. 그 이전부터 생각해 온 것들을 종합해 찍는다.

하지만 여론조사는 질문을 받는 순간의 정서에 따라 달라진다. 여론조사는 흐름을 읽는 수단으로 활용해야지 수치에 빠지면 안 된다.

그럼에도 여론조사 비중이 점점 커지는 것은 정당기능이 약화됐기 때문이다. 후보 공천 때마다 여론조사를 하는데 그렇다면 유명 인사들이 공천된다. 그건 공천권을 방송이 갖는 셈이다. 정당이 자기권한을 포기하는 것이다. 대중에게 친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공천한다면 굳이 투표를 할 필요가 있을까.

당선 가능성만이 아니라 정당의 가치와 노선에 맞는 사람을 내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당은 여론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여론을 끌고 가야 한다.

정리=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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