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U제복이 존경받는 사회]<3부·上>생생한 교육의 현장, 군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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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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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해외의 메모리얼
美 해병대박물관 “65년전 해병넋 기리자”… 전사 5931명 계급장 전시

건물 비스듬히 기울여 디자인, 성조기 세우는 해병 연상시켜
美해병 235년 발자취 한눈에…전쟁 참상 생생한 교육현장으로

《나라에 목숨을 바친 천안함 희생자 46명을 기리는 추모관과 충혼탑 건립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를 위해 숨진 군인 경찰 소방관 등 MIU를 기리는 대규모 추모시설 및 기념관을 지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해외 메모리얼을 소개합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로 향하는 95번 고속도로를 1시간가량 달리면 미 해병기지인 콴티코가 나온다. 이곳에서 양성되는 미 해병 장교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로 보내진다. 비스듬히 쓰러져 있는 듯한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이 눈에 띈다. 2006년 완공된 이 건물은 미 국립해병대박물관(National Museum of the Marine Corps). 건물이 옆으로 기울어져 디자인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5년 2월 5931명의 미 해병대원이 사망한 일본 이오지마전투를 기리기 위해서다. 쓰러져가는 성조기를 세우는 미 해병의 꿋꿋한 모습이 국립해병대박물관의 상징이다.

해병대박물관에선 1775년 발족한 미 해병대의 역사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 약 1만963m²의 광활한 터를 잡은 해병대박물관에선 터를 1만8580m²로 늘리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기자가 방문한 19일(현지 시간)에는 중고교생들이 단체로 관람하느라 줄을 이었다. 은퇴한 노병들은 가족들과 함께 박물관을 찾아 전쟁의 아픔을 되새겼다. 미해병헤리티지재단이 건립을 주도해 대기업을 비롯해 재단과 개인들로부터 6000만 달러를 모금해 2006년 박물관을 완공했다. 운영은 정부가 맡고 있지만 대부분 재원은 민간에서 조달되고 있다.

박물관을 둘러싸고 있는 기념공원에 들어서면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Once a Marine, Always a Marine)’이라고 적은 큼지막한 조각판이 눈에 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벽돌에는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베트남전쟁에서 전사한 해병들의 이름과 이들을 추모하는 글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여자 해병 출신인 그웬 애덤스 박물관 홍보책임자는 “벽돌 한 장에 이름을 새기려면 200달러가 든다”며 “많은 사람이 이 사업에 동참해 박물관 운영재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해병은 자유와 권리를 위해 가장 먼저 나서 싸운다.’

박물관을 들어서면 바로 마주치게 되는 전시관에 걸려 있는 문구다. 이곳에선 해병대 입소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명예의 메달’ 빼곡 미국 버지니아 주 콴티코의 국립해병대박물관 내에 있는 전쟁기념관에는 1775년 미 해병대 창설 이후 전쟁에서 탁월한 공을 쌓아 대통령으로부터 ‘명예의 메달’을 받은 해병 영웅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19일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이 해병 출신인 자원봉사자로부터 명예의 메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콴티코=최영해 특파원
‘명예의 메달’ 빼곡 미국 버지니아 주 콴티코의 국립해병대박물관 내에 있는 전쟁기념관에는 1775년 미 해병대 창설 이후 전쟁에서 탁월한 공을 쌓아 대통령으로부터 ‘명예의 메달’을 받은 해병 영웅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19일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이 해병 출신인 자원봉사자로부터 명예의 메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콴티코=최영해 특파원

박물관에는 미 해병대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념관이 3개 있다. 제2차 세계대전기념관과 한국전쟁기념관 그리고 베트남전쟁기념관은 당시 치열한 전투상황을 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2월 미 해병 5931명이 전사한 일본 이오지마전투는 미 해병대 역사에 최악의 참사로 남아 있다. 기념관에는 당시 사망한 해병 5931명의 계급장이 전시돼 있다. 애덤스 씨는 “사상 최악의 이오지마전투에서 전사한 미 해병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이들이 착용한 것과 똑같은 모양의 계급장 5931개를 전시했다”고 말했다.

미국 버지니아 주 콴티코의 해병대 기지 인근에 위치한 국립해병대박물관에는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한국전쟁기념관이 마련돼 있다. 건물 모형 벽면에 북한 김일성 주석의 얼굴 사진이 눈길을 끈다.
미국 버지니아 주 콴티코의 해병대 기지 인근에 위치한 국립해병대박물관에는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한국전쟁기념관이 마련돼 있다. 건물 모형 벽면에 북한 김일성 주석의 얼굴 사진이 눈길을 끈다.
“손과 발이 꽁꽁 얼어 모두 마비가 됐다. 뼈끝에 사무치는 추위가 엄습했다. 이렇게 많이 떤 것은 처음이었다.” 6·25전쟁에 참전한 미 7해병대 소속의 조지프 오언 중위가 남긴 글이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당시 살을 에는 추위를 관람객들이 실감하게 하려고 찬 공기가 나오도록 해 놨다. 인해전술에 나선 중공군을 맞아 고군분투하는 미 해병의 모습을 담고 있다. 당시 1해병대 소속의 비행기 조종사인 더글러스 윙은 “맥아더 장군이 중공군의 개입을 무시하고 38선을 넘을 것을 명령하는 바람에 대재앙이 벌어졌다. 어떤 해병도 이처럼 열악한 기후에서 싸워본 적이 없었다”고 적고 있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 해병은 4267명, 부상자는 2만3744명이다.

박물관 로비 중앙에는 전쟁에서 탁월한 공을 쌓아 대통령으로부터 명예의 메달(Medal of Honor)을 받은 해병들의 사진이 빼곡히 전시돼 있었다. 1775년 미 해병대 창설 이후 명예메달을 받은 해병들의 사진이 모두 걸려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및 베트남전쟁 당시 명예의 메달을 받은 해병이 많았다. 박물관에서 만난 테런스 루이스 소령은 “나라를 위해 큰 희생을 한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미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 해병의 역사는 바로 미국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콴티코=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한국전쟁기념관 벽면에 참전용사 2500명 형상화 ▼

■ 美 전사자 추모 현장

“베트남전쟁 장병들 기리자” ‘움직이는 벽’ 美전역 순회
1차대전후 실종군인 유해 특수부대 파견 끝까지 찾아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쟁기념관은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사진은 기념관에 세워진 한국전 참전 기념동상. 50m 길이의 화강암 벽면에 2500여 명의 참전용사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쟁기념관은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사진은 기념관에 세워진 한국전 참전 기념동상. 50m 길이의 화강암 벽면에 2500여 명의 참전용사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1979년 6월 미국 해병대 대위로 예편한 6·25전쟁 참전용사 톰 테렐 씨(79)는 매달 버지니아 주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는다. 델라웨어 주 밀스버러에 집이 있어 승용차로 3시간 이상 걸리는 곳이지만 이곳에 오는 것이 즐겁다.

먼 길인데 어떻게 매달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테렐 씨는 14일 “군인의 아내로 나보다 먼저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힌 아내를 보기 위해서 온다”면서 미소를 보였다. 그는 “30년 동안 국가를 위해 봉사한 대가로 국가에서 받는 연금도 짭짤하다”고 귀띔했다. 참전용사의 부인도 국립묘지에 묻힐 수 있다는 것만 봐도 군인을 얼마나 존중하는 사회인지 짐작이 갔다. 테렐 씨는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한국전쟁기념관에 같이 가보자고 말했다. “내 생애 가장 추운 겨울을 지낸 곳”이라며 기자의 손을 잡아끈다. 일병 시절인 1951년 2월 참전했고 1975년 다시 한 번 한국에 근무한 적이 있는 그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일을 했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국도 나의 희생을 소중히 여겼고 자랑스럽게 살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6·25 참전으로 미국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인 ‘명예의 메달’을 받은 예비역 대령 제임스 스톤 씨(88)는 한국전쟁기념관이 가진 비밀을 잘 안다. 50m 길이의 화강암 벽면에는 2500명이 넘는 참전용사의 이미지가 형상화돼 있다.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군인 19명의 모형이 벽면에 반사돼 마치 38명의 장병이 굽이치는 언덕을 행군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된다. 38이라는 숫자는 군사분계선이 된 38선을 상징한다.

한국전쟁기념관 레인저(기념관 관리 및 설명 담당)로 일하는 레이 라이언스 씨(78)는 “미국 내에서도 군인들에 대한 대우는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한국전쟁기념관은 1986년 의회가 법으로 허가를 한 뒤 10여 년 만인 1995년에 빌 클린턴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가졌다.

내셔널 몰 광장을 사이에 두고 있는 베트남전쟁기념관도 봄날을 맞아 방문객으로 성황을 이뤘다. 베트남전쟁기념관은 1979년 사단법인 베트남전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가 840만 달러의 기금을 모금해 3년의 공사 끝에 1982년 문을 열었다.

베트남전쟁에서 희생당한 장병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75m 길이의 두 개의 추모벽인 ‘더 월(the wall)’에 종이를 대고 누군가의 이름을 음각(陰刻)하고 있는 한 가족이 눈에 띄었다. 코네티컷 주에서 찾아온 이들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가 숨진 로버트 에드워드 비트너 씨를 추모하러 이곳을 찾았다. 베트남전쟁에서 숨진 아버지 마이클 조지프 딘다 씨를 찾은 마이클 딘다 주니어 씨는 “캔자스 주에서 왔다. 백악관을 등지고 있고 링컨기념관과 의사당이 한눈에 보이는 수도 워싱턴의 한복판에 아버지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거리 시간 건강 등의 이유로 워싱턴의 베트남전쟁기념관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움직이는 벽(moving wall)’은 미국인의 제복 입은 군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1984년부터 미국 전역을 순회하고 있는 ‘움직이는 벽’은 가는 곳마다 대대적인 환영과 추모를 받는다. 보통 지역마다 5, 6일을 머무는데 지역 참전용사 협회는 물론 주당국 시당국은 3, 4개월 전부터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준비한다.

미국의 전사자 및 실종 장병에 대한 집념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자국이 참전했던 전쟁에서 실종됐거나 포로로 귀환하지 못한 군인들의 유해를 지구 끝까지라도 특수부대를 파견해 찾는다.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7만8000여 명, 6·25전쟁에서 8055명, 동서 간 냉전으로 120여 명, 그리고 베트남전쟁에서 1800여 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콴티코=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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