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새학년 시작 한달… 중학교실은 지금 ‘권력이동’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4월 6일 03시 00분


운동짱-말솜씨짱 따르던 아이들 이젠 최상위권 곁으로
“고급‘정보’ 얻을 수만 있다면” 과자-음료 상납 환심사기도

《“체육시간만 되면 친구들이 서로 저와 같은 팀이 되려고 난리였어요. 점심시간에 농구하러 가자고 하면 남자애들이 거의 다 따라왔죠. 운동을 잘하는 것만으로 반 전체를 이끄는 ‘리더’가 된 기분이었어요.”(류모 군)

중2인 류 군(14·서울 강동구)은 170cm가 훌쩍 넘는 키로 학기 초부터 주목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축구교실에 다니며 쌓은 운동실력으로 체육시간에 진행되는 축구, 농구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그러자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단박에 ‘스타’로 떠올랐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류 군은 쉬는 시간이면 교단에 올라 팡팡 점프를 하면서 한 TV 코미디프로그램에 나오는 ‘곤잘레스’ 캐릭터의 춤을 똑같이 따라 추는 ‘개인기’까지 발휘했다. 그의 주변엔 친구들로 북적였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4월이 되자 그 많던 친구가 하나둘씩 유 군을 떠나가기 시작한다. 점심시간이면 “나도 농구에 끼워줘”라며 안달복달하던 남학생들도 하나둘 “할 일이 있다”며 교실을 지키는 게 아닌가. 어느덧 “함께 농구 안 할래?”하고 설득해야만 겨우 두세 명이 따라나설 만큼 류 군의 인기는 급전직하로 추락했다.》

신학기가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나는 4월이면 중학교 교실에선 은밀한 ‘권력이동’이 일어난다. 운동을 잘하거나 언변이 뛰어난 학생 주변에 ‘파리떼’처럼 꾀어들던 학생들이 하나둘 이탈하고, 학생들 사이에 새로운 인물이 ‘리더’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 리더란 과연 누굴까? 바로 공부 잘하는 학생이다.

아이들은 공포의 중간고사가 다가오는 4월 초면 학기 초의 들떴던 마음을 추스르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학생들의 표현) 공부 잘하는 친구를 추종한다. 그런 친구와 친해지려고 과자 빵 음료수 같은 ‘뇌물’을 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특히 미처 과제를 하지 못하거나 수행평가로 조별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경우 이런 상위권 학생들의 도움은 더욱 절실해진다. 이미 전(前) 학년 성적이 알려진 중2, 3학년은 물론이고, 중1 교실에도 이런 움직임은 뚜렷하다. 새 학기 시작 한 달이면 수업시간이나 수행평가를 통해 선생님의 주목을 받는 학생들이 또렷이 떠오르면서 ‘서열’이 매겨진다.

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 ○반. 4분단 맨 뒤에 앉아있던 김모 양(14·서울 은평구)은 4교시 수업이 끝나기 5분 전부터 몸을 책상에서 반쯤 뺀 채로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린다. 오후 12시 40분,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김 양이 향한 곳은 같은 반 친구 최모 양(14)의 자리다. 반 학생 24명 중 10명이 최 양에게 다가가 “함께 점심을 먹자”고 제안한다.

최 양이 이토록 인기만점인 이유? 1학년 때 전교 2등 아래로 떨어져본 적 없는 성적 때문. 김 양은 “최○○이 몇 시까지 공부하는지, 중간고사 시험공부 계획은 어떻게 세우는지, 어떤 학원을 다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점심을 함께 먹는다”고 말했다.

최 양의 노력은 차라리 평범한 편에 속한다. 중2 김모 군(14·서울 양천구)의 노력은 가상하다 못해 측은해보일 정도다. 반 중하위권 성적인 김 군은 지난해 1등을 놓친 적 없는 이모 군(14)과 또 다시 한반이 되자 4월 들어 이 군에게 ‘찰싹’ 달라붙기로 결심했다. 등교하자마자 이 군을 향해 손을 크게 흔들면서 큰 소리로 “○○야, 안녕!” 하고 인사하는 것은 기본. 이 군이 매점에 가는 시간과 주로 사먹는 과자 음료수의 종류를 눈여겨본 뒤 이 군이 매점에 갈라치면 센스 있게 이 군의 앞에 ‘갖다 바치는’ 것이다. 이 군은 “일주일 용돈 3만원 전부를 이렇게 쓰기도 했다. 이건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수학이 제 최대약점이에요. 한 번도 60점을 넘어본 적이 없어요. 이번 4월 말 시작되는 중간고사를 앞두고도 큰 걱정이었죠. 근데 점심시간에 수학 문제집을 펼쳐놓고 거의 포기 상태로 앉아 있는데 이○○가 ‘어려운 거 있으면 도와줄까?’라며 다가오는 거예요. 10분 동안 수학교과서를 함께 훑으면서 ‘시험에 나올만한 문제’라며 콕콕 찍어주는데, 기뻐서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저 같은 놈은 꿈에도 알 수 없는, 이번 수학선생님의 출제스타일까지 알려주더라고요.”(김 군)

하지만 중학교 교실의 ‘권력재편’ 현상에는 부작용도 따른다. 공부 잘하는 소수 학생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아이들의 ‘사랑’이 ‘시기’나 ‘증오’로 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위권 학생의 관심을 받는 데 실패하거나 이기적인 상위권 학생의 언사로 상처를 입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중1 박모 양(13·경기 성남시 분당구)은 지난주 영어수업이 시작되기 전 쉬는 시간에 ‘수업시간에 배운 표현을 활용해 작문을 해오라’는 영어 과제를 깜빡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행평가에 반영되는 과제이므로 감점당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든 쉬는 시간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데다 숙제 꼼꼼히 해오기로도 유명한 같은 반 강모 양(13)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 박 양은 “딱 한 번만 보여주면 다시는 보여 달란 부탁을 하지 않겠다”고 눈물겹게 다짐한 뒤 강 양의 영어노트를 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박 양은 ‘뒤통수’를 맞았다. 강 양이 “친절하게 알려주겠다”면서 자신이 써온 영어문장 하나하나를 모두 박 양에게 설명하는 게 아닌가. 결국 쉬는 시간 10분은 지나갔고, 박 양은 숙제를 제출하지 못해 감점을 당했다. 박 양은 “친절을 가장해 일부러 내가 숙제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이라면서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저렇게 ‘싸가지’ 없는 태도를 보이면 5월이 지나 아이들이 다시 등을 돌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부탁할 땐
이런 에티켓을 꼭 지키세요


1 “문제를 통째로 물어보는 건 곤란해”

모르는 게 있다고 해서 무작정 찾아가 “이게 뭐야?”라고 질문하면 상위권 학생들도 당혹스러워하거나 때론 ‘재수’ 없게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여기까지는 풀었는데 이 부분이 이해가 안돼. 좀 알려주면 좋겠어”처럼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콕 집어서 예의 바르게 질문하자.

2 “숙제, 그대로 베끼는 건 곤란해”

상위권 학생이 하루 종일 한 숙제를 가져가서 단 10분 만에 베낀 후 자기가 한 양 제출하는 친구는 ‘밉상’으로 찍혀 다시는 그런 ‘혜택’을 볼 수 없다. 제출할 과제를 깜빡했다면 친구의 숙제를 열심히 살펴보면서 이를 ‘참고’로 해 스스로 숙제를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3 “조별과제 ‘난 몰라’하는 건 곤란해”

조별과제를 할 때 공부 잘하는 친구와 같은 조가 됐다고 해서 그 친구에게 모든 걸 떠넘기는 행위는 금물이다. ‘손 안대고 코 풀려는’ 태도는 상위권 학생들의 미움만 사기 십상. 자기 능력이 달리더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한 후 어려운 부분을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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