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같은 후배 구하러 출동 자청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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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많은 내가…” 앞장서 잠수
■ 순직 UDT 한주호 준위

작년 소말리아 최고령 파병… 외아들은 최전방 육군 중위
가족엔 “조류 세지만 해봐야” 몸 안사리고 탐색줄 설치


“군인으로서 언제나 위험한 일에 앞장서셨죠. 소말리아 다녀오신 지도 얼마 되지 않아 솔직히 이번 천안함 작업은 말렸는데 ‘군인이라면 해야 할 일’이라고 하시더니….”

최전방인 육군 1사단에서 중위로 복무 중인 아들 한상기 씨(25)는 아버지의 뜻밖의 사고에 망연자실했다. 그는 “엄격한 군인이셨지만 가족들에게는 떨어져있을 때도 매일 전화를 주던 누구보다 다정한 분이셨다”며 울먹였다.

“이번 천안함 작업 중에도 매일 통화를 했는데 물속에서 앞이 잘 안보여서 답답해하셨어요. 조류가 너무 세서 힘들다면서도 어떻게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죠.”

30일 오후 서해 백령도 부근 천안함 침몰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하다 순직한 한주호 준위(53·준사관 41기)는 위험한 작업에 몸을 아끼지 않던 ‘참군인’이었다. 지난해 3월에는 소말리아 해역의 선박보호 임무를 위해 파견된 청해부대 1진에 자원해 최고령의 나이에 소말리아에 파병됐다.

50세가 넘은 나이에 파병을 나가면서도 한 준위는 주위의 걱정에 “군인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기본임무”라고 답했다. 훈련을 통해 철저하게 체력을 관리해 20대 신세대 장병과의 팔씨름에서도 뒤지지 않았던 그는 총 7차례에 걸친 해적퇴치를 벌였고 지난해 8월 6일 해적선에 대한 공격 때는 해적선에 직접 승선하기까지 했다.

해군 특수전여단 수중파괴대(UDT) 소속인 한 준위는 이번에도 26일 서해 백령도 근해에서 초계함이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음 날 바로 자원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1975년 2월 특전 27차 해군부사관으로 입대해 35년 넘게 군 생활을 한 베테랑인 만큼 자신의 경험을 살려 찬 바다에 빠진 아들 같은 후배들을 1명이라도 더 구해보려 했던 것. 그는 29일 함수가 침몰한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부이를 설치할 때도 “직접 들어가겠다”며 자원했고 30일엔 함수 부분 함장실에 탐색줄을 설치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악명 높은 사고 해역의 조류와 수압은 베테랑 해병인 한 준위가 견디기에도 너무 벅찼다. 심해에서 나흘째 이어졌던 작업도 부담이 됐다. 탁한 시야와 폭풍 같은 조류에 답답해하던 그는 오후 3시경 함수 부위에서 작업을 하다 의식불명으로 쓰러졌다. 동료가 긴급히 수면위로 부상시킨 뒤 한 준위는 곧바로 미 해군 구조함 살보(SALVOR)함으로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이날 오후 경남 진해시 자은동 집에서 비보를 들은 부인 김말순 씨(56)는 “남편이 일요일(28일) 올라갈 때 얼굴도 못 봤다”며 “어제 전화를 했는데 남편이 ‘배에 들어왔다. 바쁘니까 내일 전화할게’라고 말한 것이 마지막이 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동서 고정욱 씨(55)는 “주변 동료와 후배들은 그를 UDT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렀다”며 침통해했다.

군도 한 준위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한 준위와 함께 근무했던 UDT 김학도 소령은 “그분은 한마디로 솔선수범이란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진정한 UDT 용사였다.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 역시 “위태로운 여건에서도 실종자를 어떻게든 구하려고 무리한 것 같아 안타깝다”며 “그는 참군인”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35년의 군 생활 동안 국무총리 표창, 국방부 장관 표창, 작전사령관 표창 등 다수의 표창을 받았던 한 준위는 올해 9월 전역 전 직업보도교육을 앞둔 상태였다. 한 준위의 시신은 헬기를 이용해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1남1녀가 있다.

백령도=유성열 기자 ryu@donga.com

진해=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성남=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동영상 = 천안함 사고직후 승조원 구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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