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출근해요/2부]<3>‘기업, 보육시설 기부’ 새 트렌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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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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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부담 기업이 함께…” 부부 대학원생-교직원에 ‘행복’ 기부

8일 개원한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캠퍼스 안 ‘유진 하이마트 어린이집’에서 직원들이 아이들 등원을 앞두고 장난감 등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어린이집 전경. 어린이집 뒤로 나가면 아이들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숲이 바로 나온다. 원대연 기자
8일 개원한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캠퍼스 안 ‘유진 하이마트 어린이집’에서 직원들이 아이들 등원을 앞두고 장난감 등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어린이집 전경. 어린이집 뒤로 나가면 아이들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숲이 바로 나온다. 원대연 기자
《‘학교 안에 직장보육시설이 생깁니다. 관심 있는 대학원생은 맡길 자녀수를 기입해서 회신해 주십시오.’ 지난달 연세대 경영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전경미 씨는 학교 e메일에서 눈에 띄는 제목을 보고 서둘러 클릭했다. 대학 내에 직장보육시설이 생기니 맡길 아이가 있는 학생은 신청하라는 내용이었다. 같은 대학원(MBA 과정)에 재학 중인 남편도 똑같은 e메일을 받고는 전 씨에게 전화를 했다. 전 씨 부부에게는 세 살짜리 딸 정민이가 있다. 부부는 설렜다. 공부하느라 아이에게 소홀할까봐 노심초사했던 순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제 3층건물 기증식 열려…캠퍼스內 첫 직장보육시설 90명중 절반이 원생 자녀
“아이 걱정 덜고 연구 전념”…유진측 “기부 계속 하겠다”


○ 아이 맡길 데 없어 발 구르던 일본 유학생이 계기

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캠퍼스 안에서는 의미 있는 기증식이 열렸다. 유진그룹이 연세대에 ‘유진 하이마트 어린이집’을 기증한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이 어린이집은 2008년 공사를 시작한 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올 초 완성됐다. 학교에서 넓은 용지를 제공해 민간 어린이집보다 복도도, 교실도 두 배 넓다. 교육프로그램은 직장보육시설 전문지원 회사인 푸른보육경영에 맡겼다.

유진그룹과 연세대의 어린이집 기증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세대 여성특별위원회가 열리던 2005년의 어느 날. 이 학교에 유학 온 일본인 다카하라 지에 씨가 입을 열었다. “임신했는데 아이를 낳으면 맡길 친정도 없고, 경제적 여유도 없다. 걱정이다.”

유학생의 발언은 그 자리에 있던 김한중 연세대 총장(당시 부총장)의 마음을 움직였다. 김 총장은 1984년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한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을 떠올렸다. 둘은 1990년대 학교의 농구부장과 농구부 후원회장을 하면서 친해진 사이였다. 김 총장은 “학교 안에 어린이집을 지어야겠다. 도와 달라”고 말했다. 유 회장은 흔쾌히 응했다.

유 회장이 선뜻 어린이집을 기증하겠다고 한 것은 누구보다 보육시설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 회장은 유진기업의 사세가 커지기 전인 1998년부터 경기 부천지역 주민들을 위한 유진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인근 지역에서는 서울 강남 못지않은 ‘명품 어린이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차별 없는 사회를 가르쳐야 한다는 유 회장의 뜻에 따라 이 어린이집은 장애, 비장애 아동이 함께 다닌다.

○ 유진그룹 “보육시설 기부 계속하겠다”

유진그룹은 어린이집 기증 사실이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게 부담스러운 눈치다. 요즘 여의치 않은 그룹 사정 때문이다. 유진그룹은 1969년 건빵 등을 만드는 ‘영양제과’를 모체로 출발했으며 1984년 레미콘 사업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둔 중견기업이다. 이후 증권사, 택배회사, 유통회사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사세를 키웠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위축으로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한 상황이다.

그룹 전체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지만 유 회장은 연세대에 기증하기로 약속한 어린이집 준공을 미루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새 놀이터를 지어주겠다’는 아이들과의 약속은 어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건물을 지으면서 아이들을 위해 자연을 닮은 공간을 만들려는 노력도 더했다. 경사면을 최대한 활용해 각층에서 바로 숲으로 나갈 수 있게 ‘숲속 어린이집’을 지향했다. 건축적으로도 층간 방음재, 친환경 페인트 등 좋은 자재만을 사용하며 건물 곳곳에 공을 들였다.

유 회장은 이날 기증식 축사에서 “한 기업의 작은 노력으로 만든 공간이지만 모범적인 기부 사례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며 “전국 260개 하이마트 매장에 순차적으로 직장인을 위한 어린이집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 캠퍼스 시설 대학생과 함께 이용

대학 내 직장보육시설이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몇몇 대학에 만들어진 부설 어린이집은 지역주민을 위한 것이었다. 또 아이를 하루 종일 맡기고 싶은 교직원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신윤승 어린이집 원장은 “교직원들이 우선이지만 학생들도 필요할 것이라고 보고 전체 메일을 보냈다”고 말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현재 90여 명의 원생 중 절반이 대학원생의 자녀다. 인도에서 온 연구원도 아이를 맡겼다.

전 씨는 “주위에 믿고 맡길 보육시설이 없어 인천지역에 사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격일로 서울 용산에 올라와 아이를 봐줬다”며 “연구실에서 10분 거리의 직장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니 어머니들에게 죄송한 마음도 덜고 마음도 놓여 연구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뻐했다.

캠퍼스의 모든 시설을 아이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점도 대학 내 직장보육시설의 장점이다. 좁은 건물 내 위치하는 대부분의 어린이집과 달리 어린이집 뒤쪽은 숲과 어우러진 청송대가 펼쳐져 있다. 조승현 푸른보육경영 사무국장은 “대학교 내에 직장보육시설이 생기면 캠퍼스 안의 자연을 아이들이 그대로 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 안에 입주한 은행과 빵집, 서점도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는 학습공간이 된다. 외부 견학을 위해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갈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안전 문제. 이 부담도 캠퍼스 내의 시설을 활용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대학생 동아리들도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참여시킬 예정이다. 신 원장은 “사물놀이, 음악연주를 하는 동아리들의 협조를 구해 아이들에게 공연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 ‘출산장려기업’ 롯데백화점 서울 재동에 어린이집 1호 문열어
새소리 들으며 영어 수업까지… “엄마, 나 집에 안갈래”


5일 문을 연 롯데백화점 어린이집 1층에 마련된 놀이공간인 ‘유희실’.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도,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도 신나 보인다. 놀이기구는 모두 원목으로 만들어진 친환경 제품이다. 사진 제공 롯데백화점
5일 문을 연 롯데백화점 어린이집 1층에 마련된 놀이공간인 ‘유희실’.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도,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도 신나 보인다. 놀이기구는 모두 원목으로 만들어진 친환경 제품이다. 사진 제공 롯데백화점
“선생님, 새가 노래해요. 어디 숨어 있어요?”

8일 서울 종로구 재동 ‘롯데백화점 어린이집’. 아이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 소리에 귀를 쫑긋거렸다.

“저기 아래 보이는 집 가운데 향나무가 있죠. 거기서 들려오네요.” 선생님의 답변에 아이들은 향나무 속에 숨어있을 새를 찾느라 여념이 없다.

‘롯데백화점 어린이집’은 지난해 9월 보건복지가족부가 출산장려기업 정책을 발표한 지 7개월 만인 5일 문을 연 1호점이다.

재동 한옥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어린이집은 354m²(107평) 규모로 마치 미술관 같은 외관을 갖고 있다. 내부 인테리어는 모두 친환경 자재다. 벽지 바닥재 접착제뿐 아니라 목재, 교구도 환경마크 인증을 받은 제품이다. 안전을 위해 가구의 모서리도 둥글둥글하다. 보기만 해도 뒹굴며 놀고 싶어진다.

2층에 올라가면 쏟아지는 햇빛 사이로 오밀조밀한 전통 한옥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주변 여건과 시설이 좋다 보니 아이들의 적응속도도 빠른 편이다. 입소 첫날부터 집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가 있을 정도. 원목 놀이교구를 갖고 놀던 세 살배기 혜림이는 집에 가자는 엄마 손을 뿌리치며 엉엉 울었다.

우수한 보육교사들도 어린이집의 자랑이다. 10명 뽑는 데 600명이 지원했다. 60 대 1의 경쟁률이었던 셈. 교사 1명이 어린이 4, 5명을 맡는다. 영어교육 자격증인 테솔(TESOL)을 갖고 있는 교사가 조만간 ‘잉글리시 쿠킹’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운영시간은 백화점 영업시간에 맞춰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다. 주말에 더 바쁜 매장 직원들을 위해 휴점일을 제외하고 매일 운영한다. 월간 보육료는 20만∼32만 원. 맞벌이 부부들은 대부분 차등보육료 지원을 받지 못하므로 동네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총 50명 정원에 벌써 48명이 찼다.

엄마의 직장과 조금 먼 것이 아닐까 했지만 서울 중구 소공동의 롯데백화점에서 출퇴근 시간에 맞춰 하루 네 번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손자옥 롯데백화점 어린이집 1호점 원장(34)은 “대기업이 과감하게 투자한 만큼 최고의 시설과 교사를 갖췄다”며 “일터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졌다는 엄마가 많다”고 말했다.

손 원장은 동아일보와 함께 직장보육시설 컨설팅을 해 주는 모아맘 보육경영연구소에서 파견됐다. 롯데백화점은 새로 문을 여는 점포를 중심으로 3년간 어린이집을 11개 이상 열 계획이다.
<특별취재팀>

▽팀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산업부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사회부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교육복지부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오피니언팀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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