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스트레스 풀려고 찌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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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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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깊은 사회… 사람이 무섭다

보름만에 입 연 ‘신당동 살해범’
“다른 여자 2명도 찌르려 했다”

지난달 18일 0시 40분경 발생한 ‘신당동 살인사건’의 용의자와 피해자가 인근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용의자 이모 씨(아래)가 회사원 김모 씨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중부경찰서 ☞ 사진 더 보기
지난달 18일 0시 40분경 발생한 ‘신당동 살인사건’의 용의자와 피해자가 인근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용의자 이모 씨(아래)가 회사원 김모 씨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중부경찰서 ☞ 사진 더 보기
“사람을 찌르면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았습니다. 그것뿐입니다.”

일주일 넘게 범행을 부인하던 서울 중구 ‘신당동 살인사건’의 용의자 이모 씨(29)가 2일 오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경찰은 그가 밝힌 범행 동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죽일 생각은 없었다”며 “칼로 찔러 상처만 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사건은 지난달 18일 발생했다. 이날 0시 40분경 집으로 돌아가던 회사원 김모 씨(30·여)가 등을 칼에 찔린 채 숨졌다. 사건을 맡은 서울 중부경찰서 형사들은 인근 폐쇄회로(CC)TV를 분석하다 한 남성이 김 씨를 따라가는 장면을 포착했다. 경찰은 그가 이동한 모든 장소의 CCTV를 확보해 분석한 후 23일 이 씨를 검거해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바지에서 피해자 혈흔이 나왔는데도 이 씨는 범행을 부인했다. 경찰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이 없는 이 씨를 보며 답답해했다. 4일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인 경찰이 2일 마지막으로 물었다. “증거가 너무 명확해 판결에는 지장이 없다. 사람을 죽였으면 뉘우치는 게 옳지 않겠나?”

그제야 이 씨가 입을 열었다. “어젯밤 꿈에 그 여자가 나왔습니다.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어릴 때 신당동에서 살 때 말수가 적어 집단따돌림을 당했다. 그 이후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증오스러웠다”며 “사건 당일에도 피해자를 살해하기 전에 두 명의 여자를 찌르려고 따라갔다”고 말했다. 힐끔힐끔 이 씨를 돌아보는 여자들은 겁이 나서 찌르지 못했다. 이후 이 씨는 휴대전화로 남자친구와 통화하며 걷던 김 씨를 발견하고 뒤를 쫓았다. 이 씨는 “150m를 따라가 무조건 찔렀다”고 말했다.

이 씨는 고교 2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고 군대에서도 한 차례 탈영했다. 2003년에는 부산에서 사람을 칼로 찔러 살인미수죄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소 이후 밤에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호프집 일을 돕고 낮에는 잠을 잤다.

이 씨를 조사한 수사관들은 “정말 이상한 살인범”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흔한 신용카드도 없었다. 휴대전화 통화 기록을 조회했지만 가족 외에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거나, 무언가에 몰입하는 일반적인 ‘살인자’의 특성도 없었다. ‘이 지역에는 CCTV가 설치돼 있다’는 CCTV 경고 팻말이 있는데도 이 씨는 얼굴을 가리지 않았고, 살해 당시 입었던 옷을 빨지 않았던 점도 의문이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자퇴 탈영 등의 경험으로 볼 때 이 씨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것으로 보인다”며 “정확한 감정이 필요하겠지만 정신장애가 있는 경우 범행에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씨를 정신분석한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관계자는 “이 씨가 지금 정신질환을 앓는 상태는 아니지만 심각한 타인 기피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 단독입수 영상 = ‘신당동 살인사건’ 폐쇄회로(CC)TV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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