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출근해요/2부]<2>‘아이와 한 건물’ 숙원 풀었더니 ‘육아퇴직’ 한 명도 안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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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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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과 동시에 교사가 맡아 점심시간은 아이와 함께
모유수유-병원왕래 거뜬…인력유출 고민했던 회사
시설-주차장 파격적 지원…급식-수업에도 부모 참여

“우리 아이 곧 동생 볼거예요”  한국프뢰벨에 근무하는 편민 정혜경 씨 부부는 작년 3월 회사 안에
어린이집이 생긴 후부터 매일 출퇴근길을 아들 아인이와 함께한다. 지난달 19일 편 씨 부부가 업무시간 중 잠시 짬을 내
어린이집에서 아인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정 씨는 지금 임신 6개월째다. 변영욱 기자
“우리 아이 곧 동생 볼거예요” 한국프뢰벨에 근무하는 편민 정혜경 씨 부부는 작년 3월 회사 안에 어린이집이 생긴 후부터 매일 출퇴근길을 아들 아인이와 함께한다. 지난달 19일 편 씨 부부가 업무시간 중 잠시 짬을 내 어린이집에서 아인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정 씨는 지금 임신 6개월째다. 변영욱 기자
《아이를 낳고 싶게 만드는 직장, 그런 직장의 비결은 무엇일까. 유아교육출판회사인 프뢰벨어린이집에 답이 있다. 여성들이 아이 낳기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육아 부담이다. 그러나 이 회사의 갓 결혼한 여성들 사이에서는 아이 갖기 붐이 일고 있다. 올해만 출산 예정인 여직원이 10여 명이다.》
○ 직장어린이집 덕에 이직률 ‘제로’


보통 교육출판업계의 이직률은 20∼30%지만 이 회사에서 지난해 3월 어린이집을 열고 난 후 지금까지 육아 문제로 회사를 관둔 여직원은 한 명도 없다. 어린이집 운영을 포함한 회사의 육아 지원 정책이 직원들에게 큰 힘이 된 것이다.

프뢰벨어린이집 운영은 위탁보육 전문회사인 모아맘 보육경영연구소에서 맡았다. 당초 생후 7개월∼만 2세 아이만 돌봤으나 직원들의 호응이 커 올해부터 만 3세 반을 만들었다. 정원도 13명에서 20명으로 늘렸다. 어린이집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아이만 벌써 4명이다. 회사는 시설 규모를 추가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회사도 즐거워하고 있다. 가장 우려했던 인력 유출 고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 회사의 이직률은 제로(0)였다. 그만큼 직장어린이집에 대한 신뢰가 크다는 얘기다. 기자가 어린이집을 둘러보는 도중 한 여직원이 점심시간에 짬을 내 막 돌이 지난 아이에게 젖을 먹이러 왔다. 가까이 있어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 직장보육시설의 큰 장점이다. 손자옥 프뢰벨어린이집 원장은 “어린이집이 사무실과 바로 붙어 있어 부모가 아이와 함께 있는 느낌이 들어 믿음이 가는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매달 아이들이 먹는 급식을 부모가 직접 시식해 보는 ‘맛있는 간담회’도 믿음이 가는 대목이다. 인형 만들기, 학부모 인형극 등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 이후 부모가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많다. 손 원장은 “이런 프로그램이 육아를 100% 책임지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를 위로해 준다”며 “부모와 함께하는 참여 수업 시간을 많이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 “믿는 어린이집 생겨 둘째 가졌어요”

프뢰벨에 다니는 편민(33), 정혜경 씨(32) 부부를 따라가 봤다. 부부는 만으로 세 살 된 아인이와 함께 매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회사로 출근한다. 작년 3월 회사 안에 어린이집이 생기면서부터다.

아이 걱정에 일이 제대로 손에 안 잡혔다던 정 씨는 “아이 문제로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던 무렵 직장어린이집이 생긴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 소식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요즘 편 씨 부부에게 하루 일과 중 가장 행복한 때는 아인이와 함께하는 출퇴근 시간이다. 길이 막히더라도 걱정이 없다. 오히려 가족 간에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편 씨 부부의 일상에도 여유가 생겼다. 어린이집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편 씨 부부는 아이가 아프면 동료들 눈치를 살피며 휴가를 냈다. 하지만 요즘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 소아과를 찾는다. 정 씨는 “직장어린이집이 오후 7시까지 운영해 잔업이 있어도 30∼40분 이내에 업무를 처리한 후 아인이와 함께 퇴근할 수 있어 업무 집중도가 높아진 것도 장점이다”고 말했다.

정 씨는 지금 임신 6개월째다. 그는 “아인이를 낳고 4년간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게 너무 힘들어 둘째 갖는 것을 내심 포기했었다”며 “직장어린이집 덕분에 육아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정 씨는 자기처럼 둘째를 갖기로 결심한 동료가 몇몇 있다고 덧붙였다.

○ 어린이집 여는 데 2년 걸려

한국프뢰벨이 어린이집 문을 여는 데는 2년 가까이 걸렸다. 예상보다 준비 기간이 길어진 데는 적절한 조언을 구할 곳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아니다 보니 어린이집 준비를 위한 전담팀을 꾸리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직원 한두 명이 어린이집을 여는 데 필요한 행정 절차를 챙기고, 어린이집 운영 노하우를 모으는 데만 1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할 것인지, 외부의 위탁보육기관에 맡길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외부 기관에 위탁할 경우 유아전문 교육업체라는 회사 이미지가 실추될 수도 있었다. 마땅히 물어볼 만한 정부 부처나 공신력 있는 기관도 없었다. 토론 끝에 위탁보육 전문회사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문제 하나가 해결되자 이번에는 주차 문제가 골치를 썩였다. 회사가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데다 본사 건물 내에 영어유치원 등 사업장이 있어 직원들이 회사 주차 시설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린 자녀와 함께 오전 8시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회사로 출근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경영진이 불편을 감수하기로 하면서 해법을 찾았다. 회사 주차시설의 우선권을 임원이 아니라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직원에게 줬다. 그래도 주차 공간이 부족하자 인근 건물의 주차장을 빌려서 사용하기로 했다. 운영비용 부담이 늘었지만 직원들의 만족은 그만큼 커졌다.
■ 정은미 한국프뢰벨 본부장

▼“인재 떠나지 않으니 회사가 큰 이득”▼
육아 지원이 곧 인력관리
보 육료 전액과 완구 등 제공


“경영진도 부모인데 왜 모르겠습니까. 자녀 대신 일을 택하라고 직원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 않나요.”

정은미 한국프뢰벨 본부장(사진)은 “한창 일할 연차의 직원들이 보육 문제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지 않도록 하려면 그 정도 투자는 해야 하지 않겠냐”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프뢰벨은 1977년 전집을 팔던 출판사로 시작한 회사다. 이후 유럽 지역에서 인기를 끌었던 은물(나무로 만든 교육완구)을 국내에 들여오면서 엄마들 사이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1986년 국내 민간업체로는 최초로 유아전문교육연구소를 세우면서 유아를 겨냥해 다양한 출판과 교육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재 한국프뢰벨의 임직원 수는 313명이며, 이 가운데 서울 본사 근무 인력은 170명 남짓이다.

본사 인력 규모만 놓고 보면 독립된 어린이집을 운영한다는 것은 도저히 ‘남는 장사’가 아니었다. 대기업도 아닌 회사가 어린이집을 세우겠다고 나서자 같은 교육출판업계에서는 ‘그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20∼30%에 이르는 이직률을 감안하면 어차피 옮길 직원들의 복리후생에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프뢰벨의 생각은 달랐다. 전체 직원 가운데 여성 비율이 70%에 달했다. 여성 인력 관리가 중요해진 것이다. 경쟁력 있는 3∼10년차 여성 직원들이 육아 문제로 회사를 그만두는 사례가 늘기 시작했다. 정 본부장은 “육아 문제가 기업의 위기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단순히 비용을 지출하는 문제가 아니라 위기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어린이집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국프뢰벨은 직장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의 보육료를 자녀 수에 상관없이 전액 회사에서 지원한다. 자사에서 나오는 교육완구와 서적도 가장 먼저 어린이집에 무상으로 제공한다. 인근 공원으로 나들이 갈 때는 유모차도 지원한다. 교사 1명이 영아 3명 이상을 담당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전담조리사가 하루 세 끼를 챙기는 것은 기본이다. 회사에 속한 학습지 교사들의 자녀에게도 시간제 보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 본부장은 “회사로서도 원하는 인재가 그만두지 않으니 큰 이득을 보는 것 아니냐, 당연히 보육료를 회사가 지원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교육출판회사와 달리 한국프뢰벨에는 10년 넘는 장기근속자가 많다”며 “인재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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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팀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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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오피니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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