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AT 문제지 또 유출시험 이틀전 조사관 급파…‘블랙리스트’ 강사 예의주시“전원 성적무효 배제안해”유출 주도한 학원강사 장씨 “다른 강사에게 배운대로 해”
최근 한국 경찰에 SAT 시험지 유출자가 처음으로 적발되면서 파문이 일자 이번에는 미국 교육평가원(ETS)이 작심하고 직접 나섰다. 문제지 유출 전력을 사전에 파악해 ‘블랙리스트’에 올려놓았던 R어학원 강사 장모 씨(36)를 주시하고 있다가 또다시 문제지 유출이 발생하자 시험종료와 동시에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민첩성을 보였다. 경찰은 ETS로부터 문제 유출 정황이 포착된 ‘블랙리스트’를 넘겨받기로 하는 등 강남 학원가 전체로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 문제지 빼돌리기 치밀하게 공모
23일 SAT 시험문제를 빼돌린 혐의로 입건된 장 씨는 차모 씨(24) 등 대학생 3명을 고용해 조직적으로 시험문제를 빼냈다. 지난해 10월, 11월, 12월에도 시험지를 빼낸 전력이 있는 만큼 수법은 교묘하고 섬세했다. 장 씨와 장 씨가 10만 원씩 주고 고용한 차 씨 등 4명은 시험 전날인 22일 만나 범행을 사전에 공모했다. 장 씨는 시험장에서 망을 보고, 모두 14장으로 구성된 SATⅡ 수학·물리 시험지는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본 차모 씨 등 3명이 각자 서너 장씩 빼내기로 했다. 4명이 각자 빼낸 시험지를 합하면 완성본이 된다.
감독관 몰래 시험지를 잘라내기 위한 도구도 만들었다. 엄지손가락만 한 지우개에 문구용 칼날을 박은 것이 범행 도구였다. 시험지가 배부됐지만 문제를 풀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차 씨 등은 준비해간 도구를 이용해 시험지에 쓴 글씨를 지우는 척 조금씩 시험지를 찢어냈다. 시험을 보는 데 필요한 공학용 계산기도 이용했다. 차 씨 등은 계산기에 직접 문제를 입력하거나 케이스에 베껴 적는 방식으로 문제를 빼냈다.
○ ETS도 본격 대응
이들이 지난해와 달리 올해 적발된 것은 ETS가 본격 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ETS 측은 장 씨 등이 시험지를 유출했다는 시험장 관리자의 제보를 받고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당시 ETS는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ETS 본사는 21일 시험 보안 담당자를 한국에 급파했다. 한국에서 일고 있는 SAT 문제 유출에 대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ETS 측은 23일 낮 12시 반경 시험이 끝나자마자 장 씨가 시험을 본 곳에서 시험지들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ETS는 곧바로 서울 수서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4시경 장 씨를 체포했다. 앞서 입건된 강사 김모 씨 건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는 줄로만 알았던 장 씨는 결국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됐다.
장 씨는 경찰조사에서 “수업에 참고자료로 이용하려고 시험지를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아직까지 장 씨의 e메일 기록에서 미국이나 외부로 23일 시험문제가 유출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은 장 씨의 개인 노트북에서 지난해 11월 SAT 시험 당일에 저장했다가 삭제한 문서 파일이 발견된 점이나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중에도 무리하게 문제유출을 한 점 등으로 미뤄 장 씨가 유출한 시험지를 학생들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장 씨는 “다른 강사들에게 다 배운 대로 했을 뿐”이라며 “열심히 가르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학부모나 학생들이 모두 족집게 강사, 맞춤형 강사를 원해 유출을 안 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학원 수강생들이 “어떤 선생님은 이런 수법으로 시험지를 빼내오는데 왜 선생님은 못하느냐”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응시자 전체 성적 무효화 가능성도”
ETS 측은 24일 공식 해명자료를 내고 “잇따른 문제 유출 사건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천 명의 한국학생들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이번 사건과 한국 언론의 문제제기를 통해 시험보안 침해에 대해 지속적이고 철저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SAT 시험 운용이나 성적 처분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2007년처럼 응시자 전체 성적이 무효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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