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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9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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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인천국제공항. 일본인 관광객 T 씨(26·여)는 세관 요원의 검색 후 전격 체포돼 검찰에 넘겨졌다. 쇼핑백을 든 평범한 관광객으로 보이던 T 씨의 짐에서 히로뽕이 1kg이나 나왔기 때문. 히로뽕은 고급 그림 액자 2개의 뒷면에 나뉘어 숨겨져 있었다. 인천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는 일본 경시청과의 공조수사를 거쳐 T 씨를 구속기소했다.
○ ‘쇼핑백’ 뒤에 숨은 국제마약조직
T 씨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출발해 카타르에서 비행기를 갈아탄 뒤 일본을 거쳐 한국에 입국하던 중이었다. 세관 요원은 장거리 여행을 한 일본 여성이 일본으로 귀국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을 경유해 한국으로 들어온 점을 수상하게 여겨 짐 검색에 나섰다.
T 씨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압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T 씨와 연락을 취한 국제마약범죄조직원으로 보이는 나이지리아인 I 씨, 일본에 거주하는 나이지리아인 P 씨, T 씨가 출발한 남아공에 체류 중인 L 씨(여)의 사진과 이들의 신상정보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여성 통역을 조사에 참여시켜 심리적으로 불안해하는 T 씨의 마음을 가라앉힌 뒤 자백을 받아냈다.
이것으로 수사가 끝난 게 아니었다. 인천지검은 곧바로 대검찰청의 국제수사협력 담당자를 거쳐 일본 경시청과 구축돼 있는 핫라인을 통해 T 씨와 관련된 자료를 모두 전달했다. I, P, L 씨와 관련된 정보도 일본 경시청의 마약범죄 수사 데이터베이스에 새로 입력됐다. 한일 양국의 수사기관은 두 차례의 정보 교환을 거쳐 수사를 마무리했다.
사건은 일본인 T 씨가 나이지리아를 관광하면서 사귄 I 씨로부터 일본에 있는 P 씨를 소개받으면서 시작됐다. P 씨의 부탁을 받은 T 씨는 50만 달러를 받고 남아공으로 ‘여행’을 간 뒤 L 씨에게서 액자를 건네받았다. T 씨로서는 공짜 여행도 하고 큰돈도 벌 수 있는 기회였다. 일본으로 액자를 반입할 때에는 곧바로 일본으로 들어가지 않고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입국하는 경로를 선택했다. 마약청정국인 한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일본 세관의 검색이 허술하다는 점을 노린 것이었다.
○ 일본인 마약 배달책 급증
최근 일본 경시청 관계자들이 인천국제공항을 관할하는 인천지검을 드나들며 마약범죄 수사를 맡고 있는 검사들과 만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마약을 운반하다 한국에서 적발되는 일본인이 많지는 않지만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
대검과 인천지검에 따르면 마약 관련 범죄를 저질러 한국에서 구속된 일본인은 2007년 2명에 불과했으나 2008년 12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8월 말 현재 일본인 4명이 구속됐다. 또 인천지검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 5월까지 마약류 집중단속을 벌여 구속한 외국인 31명 가운데 15명이 일본인이었다. 구속된 사람 가운데 절반가량이 여성이었고, 명문대 재학생과 미성년자까지 있었다.
검찰은 이런 현상에 대해 △나이지리아에 많은 마약제조 조직들이 최근 주요 마약 소비지로 일본을 선택하고 있고 △쇼핑을 많이 하는 일본인 여성을 운반책으로 삼으면 단속에 걸릴 가능성이 낮아지며 △마약청정국인 한국에서 일본으로 입국하면 공항 검색이 치밀하지 않다는 점을 그 이유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일 수사당국은 마약 수사 공조를 위한 핫라인을 구축하는 등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한국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입수한 일본인에 대한 수사정보는 일본 경시청이 일본 내 마약조직을 소탕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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