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지 않은 당신의 손, 신종플루보다 더 무섭다

  • 입력 2009년 9월 13일 20시 54분


코멘트
"손 안 씻는 의사는 살인자야!"

1840년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일하던 이그나츠 제멜바이스는 어느 날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나이든 산파들이 받는 조산소보다 의대생과 의사들이 아이를 받는 출산실에서 산모가 사망하는 비율이 더 컸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출산은 목숨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낳다 산욕열로 사망하는 산모가 5명 중 1명이었다.

그때부터 제멜바이스는 의대생들의 하루 일과를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실습을 위해 부검을 마친 뒤 아이를 받는 것을 지켜보겠다며 들어오는 의대생들 중 손을 씻고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제멜바이스는 "석회수로 손을 깨끗이 씻지 않는 의사와 의대생은 절대 수술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다. 한 달 뒤 변화는 놀라웠다. 그의 수술 방에서 산모가 사망하는 비율은 1%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은 어떨까? 2005년 한림대성심병원은 의료진이 얼마나 손을 잘 씻는지 조사했다. 내과와 외과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44명, 중환자실 인턴 4명, 상주 주치의 2명, 중환자실을 출입하는 의사 전부와 간호보조 인력 10명이 대상이었다. 결과는 장갑 착용과 관계없이 혈액, 체액, 분비물, 배설물 그리고 오염된 기구를 만진 뒤 비누나 소독제를 이용해 하루 10~15회 가량 씻는 사람이 44%였다. 그 이상도 30%에 달했다.

횟수 면에서 적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질적인 면에서는 부족했다. 손을 씻는데 들이는 시간은 10초 가량이 38%였고 9초 이하도 11%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누로 손을 씻는 경우 최소 30초 동안 정성껏 씻어야 세균이 90%가량 제거된다고 설명한다. 조사대상자 중 30초 이상 씻는 경우는 17.5%에 불과했다. '현재 손 씻는 방법이 완벽하지 않다'고 대답한 응답률은 60%를 넘었다. 2차병원에서 연수를 마친 한 내과 전문의는 "잠잘 시간도 없는데 인턴 레지던트 수련의들이 드레싱으로 처치하기 전후에 손을 문질러가면서 씻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10일 대구의 한 종합병원에서 다른 치료를 받던 61세 남성이 신종플루에 감염된 원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 환자는 4월부터 당뇨와 만성 신부전증 심장질환을 앓아 입원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7일 고열 증상을 보이더니 검사결과 신종플루 양성반응이 나왔다. 병원 내에서 감염된 첫 사례다. 의료진들은 다른 환자나 병원을 왕래하는 보호자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의료진을 통한 감염을 배제할 수 없다는 조심스러운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제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발표한 '병원감염실태'에 따르면 병원 감염율은 중환자실 재원일수 1000일당 7.43건이었다. 특히 폐렴에 걸릴 확률은 1000일당 3.14건이었다. 질병관리본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병원 내에서 살고 있는 '독한 바이러스'다. 세균 중 페니실린계 항생제도 말을 안 듣는 '황생포도상구균'이 있다. '메티실린내성황색포도상구균(MRSA)'이다. MRSA 치료는 '반코마이신'이라는 항생제로 하는데 이 항생제조차 듣지 않는 장구균(VRE)까지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의료진을 통해 이 두 가지 균이 옮겨 다닐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질병관리본부는 2007년부터 병원감염 문제에 관심을 갖고 현재 4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감시체제를 2010년 400병상 이하 중소병원에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일반인들도 손을 잘 안 씻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 등이 공동으로 조사해 예방의학회지에 발표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있다. 전국 7대 도시 공항, 터미널, 백화점 공중 화장실에서 2800명을 대상으로 화장실 사용 후 손을 얼마나 씻는지 조사했다. 조사요원들이 화장실 먼발치에서 숨어 있다 일일이 손 씻기를 체크했다. 결과는 화장실을 갔다 온 후 남자는 55%, 여자는 72%만이 손을 씻었다. 남자 중 절반 가까이는 화장실 이용 후 손을 씻지 않은 채 악수도 하고 버스손잡이도 만지는 셈이다. 그런데 '누군가 지켜보면' 손을 씻는 확률이 크게 높아졌다. 세면대 주위에 누군가 있는 경우에는 손 씻는 비율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 비해 3.19배 더 높아졌다.

최근 신종플루 여파로 국내에서도 손을 많이, 제대로 씻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서울시는 하루 8회, 매회 30초 이상 손을 씻자는 '1830 손 씻기 운동'을 확산시킬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각종 축제나 대형 행사 기간에 1830 손 씻기 체험관을 운영하는 등 홍보캠페인도 계속 벌일 방침이다.

노지현기자 isityou@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