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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24일 02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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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대훈장-노벨평화상 앞세우고 운구차-유족 입장
李여사 끊임없이 눈물… 마지막 합창곡은 ‘우리의 소원’
23일 오후 1시 55분경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에서 열린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국장 영결식. 사회를 맡은 손숙 전 환경부 장관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신 영구차가 입장하고 있습니다”라고 엄숙하게 말했다. 곧바로 조악대의 조곡이 울려 퍼지면서 운구차가 영결식장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 장남 홍일 씨 휠체어 타고 참석
DJ의 영정과 함께 우리나라 최고 훈장인 무궁화대훈장과 노벨 평화상이 운구차의 앞에 섰다. DJ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은 운구차의 뒤를 따랐다.
다리가 불편해 큰며느리와 둘째 며느리의 부축을 받아 영결식장에 들어선 이 여사는 영결식 내내 눈물을 참지 못한 채 흐느꼈다.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인 큰아들 홍일 씨는 휠체어를 타고 힘겹게 영결식에 참석했다. 차남인 홍업, 셋째 홍걸 씨도 자리를 지켰다.
영결식은 국민의례와 묵념에 이어 고인 약력보고,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국무총리의 조사와 평화민주당 총재권한대행을 지낸 박영숙 미래포럼 이사장의 추도사 낭독 순으로 이어졌다. 이후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의 종교의식이 거행됐다. DJ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이 상영되고 유족 등 참석자들의 헌화가 뒤를 이었다. 성악가 김영미 씨와 평화방송 소년소녀합창단이 ‘그대 있으매’와 ‘우리의 소원’을 불렀다. 3군 조총대원의 조총 발사 의식을 끝으로 1시간 10분에 걸친 영결식이 마무리됐다. 이날 사회는 연극배우인 손 전 장관과 함께 조순용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맡았다.
○ 화해의 마당 된 영결식장
이날 영결식에는 한 총리와 김형오 국회의장, 이용훈 대법원장 등 3부 요인을 포함해 정치, 사회, 문화, 종교계 등의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고인이 생전에 강조한 ‘용서와 화해’의 정신을 기렸다.
장의위원장인 한 총리는 조사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 사회의 화해와 통합에 크나큰 역할을 하셨다”며 “우리는 이러한 김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반목해온 해묵은 앙금을 모두 털어내는 것이 우리 국민 모두의 참뜻일 것”이라며 “이제야말로 지역, 계층, 이념, 세대의 차이를 떠나 한마음으로 새로운 통합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도 추도사에서 “김 전 대통령은 용서와 화해를 몸소 실천하셨다”며 “자신을 그토록 핍박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자들을 모두 용서했고, 용서와 화해라는 귀한 유산을 남기셨다”며 고인의 뜻을 되새겼다. 여성운동가로 DJ 내외의 오랜 지인인 박 이사장은 DJ가 평민당 총재로서 1989년 호주제를 완화하는 가족법 개정을 추진할 때 앞장섰다.
○ 4대 종교가 함께한 영결식
이날 종교의식에선 고인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점을 감안해 최창무 광주대교구장이 집전하는 천주교의 제례가 가장 먼저 이뤄졌다. 불교에서는 조계사 주지인 세민 스님, 기독교에서는 김삼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과 엄신형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원불교에서는 김혜봉 대전충남교구장이 제례를 집전했다.
종교의식에 이어 고인의 생전 모습과 육성이 흘러나왔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과 더불어 위대한 한국인의 시대를 열어가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라는 고인의 연설을 시작으로 △외환위기 극복 △정보통신 강국 건설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와 노벨 평화상 수상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 등 고인의 치적을 담은 영상물이 4분 동안 상영됐다.
○ 눈감은 YS, 머리 숙인 전 전 대통령
영상물 상영에 이어 이 여사를 비롯한 유족이 영정 앞에 헌화하고 분향했다. 눈물을 참으려 애쓰며 영정 앞에 선 이 여사는 아들들을 포함한 유족의 헌화가 끝나자 고개를 숙여 작별인사를 했다.
유족에 이어 이 대통령 내외가 헌화와 분향을 했다. 이 과정에서 VIP석 뒤편에 있던 한 50대 남성이 “위선자”라고 소리치는 등 잠시 소란이 벌어져 경호원들이 급히 제지하기도 했다.
평생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라이벌이었던 YS는 영정 앞에 헌화하며 시종 엄숙한 표정으로 지그시 눈을 감고 애도했다. 그는 최근 DJ의 서거를 앞두고 극적인 화해를 했다. 신군부 집권을 통해 DJ에게 1980년 사형을 언도하도록 했던 전 전 대통령도 영정 앞에 머리를 숙였다. 그는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는 전립샘 수술을 받았다는 이유를 들어 참석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도 노 전 대통령 영결식 때 자신의 손을 잡으며 오열했던 DJ의 명복을 기원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건강상 이유로 영결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자택에서 TV를 지켜보며 영면을 기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병기간 DJ를 문병하고 국회 빈소에서 조문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영결식에 참석했다.
주요 인사의 헌화와 분향이 끝난 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추모곡이 울려 퍼졌다. 3군 조총대의 3발의 조총 발사가 이어졌다. 손 전 장관이 흐느끼며 “이제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고 김대중 대통령을 보내드려야 할 시간”이라고 안내하는 것을 끝으로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뙤약볕 아래 진행된 이날 영결식에는 초청된 인사들 외에도 많은 시민이 국회 앞 인도에 모여서 고인의 가는 길을 애도했다. 국회에 마련된 제단에는 영결식이 끝난 뒤 DJ 영정 앞에 꽃을 올리기 위해 찾아온 시민들의 발길이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이희호 여사, 서울광장서 대국민 인사 <전문>
“평화-화해의 삶이 남편의 유지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희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와 국장 기간에 여러분이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남편은 일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권력의 회유와 압력도 있었으나 한 번도 굴한 일이 없었습니다.
제가 바라옵기는 남편이 평생 추구해 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장의위원장 한승수 총리 弔辭 <요약>
“언제까지나 겨레의 앞길 밝혀주시길”
우리는 오늘 나라의 큰 정치지도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영원히 이별하는 자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높은 위업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가 숱한 어려움을 딛고 민주화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강인한 신념과 불굴의 용기를 가진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늘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동서로 갈라지고 계층 간에 대립하고 세대 간에 갈등해서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유지를 받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반목해 온 해묵은 앙금을 모두 털어내는 것이 국민 모두의 뜻일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 이제 생전의 그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으시고 편히 영면하시기를 빕니다. 언제까지나 우리 겨레의 앞길을 밝혀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박영숙 미래포럼 이사장 추도사 <요약>
“행동하는 양심 되라는 말씀 새기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우리의 선생님!
민족의 숙원과 사회의 갈등을 풀어내는 화해와 통합의 바람이 지금 들불처럼 번지는 것은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입니다.
독재정권 아래서 늘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지만 뜻을 꺾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대통령님을 인동초라 불렀습니다.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우리 역사에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하고 남과 북의 미움을 녹여 남북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자신을 핍박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자들을 용서하며 ‘용서와 화해’라는 귀한 유산을 남기셨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는 마지막 말씀을 새기겠습니다.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선생님, 이제 그 존경과 사랑을 당신께 드립니다. 지난날은 진정 고단했으니, 부디 편히 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