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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8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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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은동이가 장애인 형 금동이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다른 애들이 하는 말이 다 맞아. 형은 멍청하고 생각할 줄도 모르는 돌덩이야. 차라리 집에서 나가!” 금동이는 말없이 집을 나섰다.
잠시 뒤 어머니가 금동이를 찾자 은동이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나가라고 했어요. 매일 실수만 하고 놀림당하고 엄마를 힘들게 하잖아요.” 어머니는 “형은 집에 들이닥친 도둑들로부터 너를 지키려다 몽둥이로 맞아서 장애를 가졌어. 어떻게 그런 형한테 집을 나가라고 할 수 있니”라고 말했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은동이는 갑자기 뛰어다니며 큰 소리로 외쳤다. “형 어디 있는 거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얼른 돌아와….”
8일 오전 60여 명의 아이가 자리를 가득 메운 서울 송파구 장지동 아이코리아센터 대강당. 서현성 씨(35·여)는 남의 일 같지 않은 연극을 지켜보며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그는 올 3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접했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유독 키가 작고 말도 어눌했던 작은아들 박상은 군(4)이 발달장애 2급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 서 씨 부부는 돌아가며 온종일 상은 군을 돌봐야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아들 상욱 군(7)의 준비물은 챙겨주지 못했고, 학교 공개수업에도 가보지 못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상욱 군은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 씨는 “손톱을 마구 물어뜯어 상처를 내거나 피부가 까져서 생긴 딱지를 아물기도 전에 떼 내 버리고 ‘엄마 나 아파’라고 말하며 다가왔다”면서 “내가 장애를 가진 상은이만 사랑한다고 여기고, 자신한테도 관심을 보여 달라며 일부러 상처를 내는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계예술치료협회는 상욱 군 형제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100여 명의 아동과 함께 8, 9일 1박 2일 동안 ‘예술치료캠프 놀이터’를 열었다. 예술치료캠프는 장애 아동과 그들의 형제자매인 비장애 아동들이 음악, 미술, 연극 등의 ‘예술놀이’를 통해 함께 어우러지며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내기 위해 마련됐다.
서현정 세계예술치료협회 대표(47·여)는 “그동안 장애 아동을 형제자매로 둔 비장애 아동들이 갖는 스트레스와 소외감에 대한 관심은 전무했던 게 사실”이라며 “함께 만들어 나가는 예술활동을 통해 장애인은 낯선 ‘타인’이 아닌 ‘우리’이며 부모의 사랑과 관심은 늘 한결같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는 일종의 ‘치료’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8일 두 아들을 캠프에 보낸 서 씨는 상욱 군에게 정성스레 편지를 썼다. 1박 2일 일정 중 마련된 비장애 자녀와 엄마 단둘이서만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에서다.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서 씨는 “엄마는 네가 옆에 있어 너무 고맙단다. 우리 상욱이는 무슨 일이든 다 잘 해낼 거라고 엄마가 믿는 거 알지?”라고 적었다. 모처럼 엄마를 독차지한 상욱 군의 얼굴에는 해맑은 웃음이 가득했다. 상욱 군은 엄마의 편지를 읽다가 친구들이 부르자 이내 놀이터로 달려갔다. 상욱 군은 뛰어나가며 동생 상은 군의 손을 꼭 붙잡았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