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법원지원장 “주말영장 기각” 발언 논란

  • 입력 2009년 6월 9일 02시 54분


“판사들도 쉬어야 하고… 서울 집에 올라가야 하고…”
검찰과 오찬서 발언… 지원장 “업무협조 부탁” 해명

“주말엔 서울에 올라가야 하는데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어떻게 합니까?”

청주지방법원 영동지원장이 영동지청장과 소속 검사들에게 “주말에는 쉬어야 하니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말라”고 한 것으로 8일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김명한 영동지원장은 “주말에 청구한 영장은 기각하라고 판사들에게 말했는데도 (판사들이) 마음이 약해서 영장을 발부해 주는 경우가 있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검찰이 경찰도 통제 못하나”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김 지원장은 올 4월 영동지청장을 비롯해 소속 판검사, 지역 변호사들과 점심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지원장은 “지난 주말 무면허 뺑소니 사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사가 누구냐”고 물었다. 이어 “검찰이 경찰 하나 제대로 통제 못하느냐. 주말에 판사들이 (서울의) 집에 못 가게 왜 구속영장을 청구하느냐”고 말했다. 김 지원장은 특히 “주말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기각하라고 했는데도 판사들이 마음이 약해서 영장을 발부해 준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김 지원장은 지난해에도 당시 지청장에게 “주말에 영장을 청구하면 기각할 테니 넣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지원장이 이날 점심 자리에서 문제 삼은 뺑소니 사건의 피의자는 전주 금요일 오후 늦게 붙잡혀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토요일에 열렸다고 한다. 이날 무면허로 운전하다가 사람을 치고 달아난 피의자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평일 심각한 사건 영장 기각해 갈등

검찰은 “법원이 ‘주말 휴무’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반응이다. 피의자를 긴급체포한 뒤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영장이 청구된 피의자에 대해 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하도록 한 것은 피의자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김 지원장의 발언은 이러한 법 취지를 저버린 행동이라는 것.

영동지청은 지난달 법무부에 김 지원장의 발언과 최근 구속영장 기각 사례 등을 보고했고 법무부는 비공식적으로 법원행정처에 이런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자체 조사 결과 문제가 됐던 김 지원장 발언 이후 주말에 청구된 2건의 구속영장이 모두 발부된 것으로 확인돼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김 지원장 발언 이후 모두 19건(주말 2건 포함)의 구속영장이 청구돼 13건이 발부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이 김 지원장의 ‘주말 영장’ 발언을 문제삼은 것은 최근 평일에 청구된 구속영장 가운데 중대한 사건의 일부가 기각된 데 따른 불만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 어머니를 차로 치어 숨지게 한 뒤 사고로 숨진 것처럼 위장한 아들에 대한 영장과 무면허 뺑소니 사고를 낸 지역 기업인이 회사 직원에게 운전을 한 것처럼 허위 진술을 시킨 사건의 영장이 잇달아 기각됐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김 지원장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발언 내용은 인정하면서도 “순수하게 말한 것이지 (검찰을) 질책하려 한 것은 아니다. 영장심사 1건 때문에 (판사들이) 주말에 집에 못 가는 일이 없도록 업무 협조 차원에서 부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주말 영장 기각’ 발언에 대해서도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판사들에게 그런 지시를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 지원장은 “지청장을 편하게 생각하고 한 이야기인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니 당혹스럽다”고 덧붙였다.

영동지원의 최근 구속영장 기각 사례

#1 X 씨는 무면허 상태에서 차를 몰다 행인을 치어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히고 달아남. 경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아 수배됐다가 검거됐으나 구속영장이 기각됨(토요일 영장실질심사).

#2 기업인 Y 씨는 무면허 상태에서 행인을 치어 전치 6주의 상처를 입히고 달아남. Y 씨는 회사 직원에게 경찰에 나가 당신이 운전했다고 하라고 요구했다가 조사 과정에서 탄로 나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기각됨. Y 씨는 이후 부하 직원이 사고를 낸 것처럼 허위로 보험금을 청구했다가 적발돼 다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기각됨.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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