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의형제의 동반 몰락

  • 입력 2009년 5월 20일 02시 58분


천신일 중수부 조사 받던 시간, 박연차 법정 출석

朴, 부축 받으며 피고인석으로
재판장이 “어디 아프냐” 묻자 “저는 아프다고 말할 수도 없다”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소환조사를 받은 19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사진)은 1심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섰다. 30여 년간 때로는 의형제로, 때로는 사업의 동반자로 끈끈한 인연을 맺어 온 두 사람이 각자 범죄혐의로 검찰과 법원에 모습을 나타내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날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법정에 들어선 박 전 회장의 모습은 편치 않아 보였다. 휠체어를 타고 법정 입구까지 온 그는 교도관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법정에 들어섰다. 재판장이 “어디가 아프냐”고 묻자 박 전 회장은 “전 요즘 아프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재판장이 거듭 어디가 아프냐고 묻자 박 전 회장은 작은 목소리로 “디스크, 협심증, 심장”이라고 답했다. 변호인은 박 전 회장이 서울구치소에서 어떤 진료를 받았는지 사실조회 신청을 하기도 했다. 천 회장에게 지난해 세무조사 무마 로비 청탁을 한 박 전 회장은 이날 재판이 끝난 뒤에는 대검 중수부로 불려가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대질조사를 위해 대기해야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 회장은 동생 친구로 알게 된 박 전 회장이 사업을 처음 시작할 무렵 부산 사상구의 자신의 집 담벼락 옆에 임시건물을 짓고 신발공장을 할 수 있도록 해줄 만큼 박 전 회장을 아꼈다. 박 전 회장은 그 무렵 천 회장의 동생이 심장마비로 숨지자 장지까지 따라가 천 회장에게 “제가 대신 친형으로 모시겠다”고 했고 이때부터 두 사람은 형제처럼 지냈다.

천 회장이 1996년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에 선임되자 박 전 회장은 1997년부터 최근까지 협회 부회장을 맡아 천 회장을 도왔다. 박 전 회장은 휴켐스를 인수한 뒤 천 회장을 사외이사로 위촉했다.

천 회장은 부산 경남의 지역 사업가였던 박 전 회장이 정관재계에 폭넓은 인맥을 쌓는 과정에도 도움을 줬다고 한다. 각계 유력인사와 친분이 두터운 천 회장은 이들에게 종종 박 전 회장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천 회장은 박 전 회장의 통이 큰 면모를, 박 전 회장은 천 회장의 치밀함을 좋아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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