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5월 7일 02시 57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4일 서울 강남경찰서 조사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아들 홍모 씨(24)를 본 아버지(52)는 가슴이 먹먹했다. 호주로 유학을 보낸 아들이 자살하려고 입국했다는 경찰 전화를 받고 제주에서 서울까지 한달음에 왔다. 세 번째 자살 기도였다. 아들은 스무 살이 되던 해 손목을 그었고, 3년 뒤엔 방에서 연탄불을 피웠다.
8년 전 아들의 우울증이 악화돼 공황장애 증상을 보인 이후로 아버지는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내성적인 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 호주로 유학도 보냈다. “제가 부모님께 받은 건 없지만 우리 아들에게만큼은 다해주고 싶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기대가 부담스러웠다. 그는 “스물다섯이 되도록 부모님께 기대고 있는 내 자신이 싫다”고 했다. 호주로 유학을 떠났지만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학업 부담이 새로운 스트레스가 됐다. 호주 유학 1년 만인 3월, 또다시 자살의 유혹 앞에 무너졌다. 홍 씨는 인터넷 자살 사이트에 ‘동반자’를 구하는 글을 올렸다. 홍 씨는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전경 김모 씨(23) 등 3명과 자살을 결행하려 2일 귀국해 장소를 물색했다. 원룸을 구해 연탄가스를 피운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함께 자살하기로 했던 회사원의 제보로 4일 서울 종로의 한 찜질방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4일 밤 홍 씨는 경찰조사를 마치고 아버지와 1년 반 만에 재회했다. 제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 아버지는 “부담 갖지 말고 서른 살까지 방황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며 아들을 달랬다. 아들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