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문, 靑 특수활동비 빼돌려 채권-주식 등으로 은닉

  • 입력 2009년 4월 22일 02시 58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사’ 역할을 해온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이 21일 오후 11시 35분 구속 수감되기 위해 검찰 승용차를 타고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은 “청와대 공금 횡령 사실을 노 전 대통령이 알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통령님은 전혀 모르는 사안이다”라고 답했다. 홍진환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사’ 역할을 해온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이 21일 오후 11시 35분 구속 수감되기 위해 검찰 승용차를 타고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은 “청와대 공금 횡령 사실을 노 전 대통령이 알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통령님은 전혀 모르는 사안이다”라고 답했다. 홍진환 기자
《대검 중수부가 21일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을 12억5000만 원의 청와대 특수활동비 횡령과 4억 원 상당의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하면서 다소 답보상태에 빠져 있는 듯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수사가 탄력이 붙는 분위기다. 검찰은 2007년 6월 말과 2008년 2월 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측에 건넨 ‘600만 달러’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있어 정 전 비서관을 가장 핵심적인 인물로 꼽아왔다. 검찰로서는 2차례의 구속영장 청구 끝에 정 전 비서관을 구속함으로써 노 전 대통령으로 향하는 ‘관문’을 넘어선 셈이다.》

‘공금+뇌물’ 15억5000만원 돈세탁 거쳐 분산관리

정씨 “죄송한 마음 금할 수 없다”…盧관련성은 부인

○ 청와대 ‘특수활동비’ 6차례 횡령

검찰에 따르면 정 전 비서관은 청와대 재직 당시 2005년부터 2007년 7월까지 6차례에 걸쳐 대통령비서실의 특수활동비 12억5000만 원을 빼돌렸다. 그는 이 돈을 최모 씨 등 2명에게 관리하도록 했다. 검찰은 이러한 범죄 사실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또 정 전 비서관이 돈을 복잡하게 세탁한 사실도 확인했다.

정 전 비서관은 빼돌린 12억5000만 원과 박 회장에게서 받은 현금 3억 원 등 총 15억5000만 원을 최 씨 등에게 관리하게 하면서 출처가 드러나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의 세탁 과정을 거쳤다. 정 전 비서관은 15억5000만 원을 채권과 주식, CMA(어음관리계좌) 등으로 은닉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12월 박 회장에게서 받은 50만 원권 백화점 상품권 1억 원어치를 받은 부분도 법원은 범죄 혐의가 소명된 것으로 인정했다.

○횡령 혐의 수사 확대

정 전 비서관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청와대 특수활동비에서 횡령한 12억5000만 원에 대해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에 건네려고 마련한 돈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그 사실을 몰랐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공금을 횡령한 이유가 노 전 대통령 때문이라는 점을 밝히면서도 노 전 대통령과의 관련성은 차단한 셈이다.

그러나 검찰은 정 전 비서관 구속 이전부터 횡령 혐의를 중심으로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방향은 두 가지다. 차명으로 관리된 자금이 더 존재할 가능성과 여기에 관련된 인사가 더 있을 가능성이다.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이날 차명계좌가 더 있느냐는 질문에 “수사를 더 해봐야 한다”고 했다. 원칙적인 답변이지만 20일 “차명계좌가 2, 3개 정도 된다”고 말한 것보다는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뭉칫돈으로 여러 차례 빼돌려 비자금을 만든 뒤 일부만 상가 임차료 등에 사용하고 대부분 차명계좌에 고스란히 보관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정 전 비서관의 범행을 사전에 알았거나 돈을 빼돌린 사실을 뒤늦게라도 알았는지 등도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경리를 담당했던 전직 행정관 2, 3명을 최근 불러 조사했으나 이들은 횡령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정 전 비서관은 구속 수감되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참으로 죄송한 마음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정 전 비서관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노 전 대통령 측은 침통한 분위기다. 이날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정 전 비서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앞서 “영장 혐의에 예산을 횡령한 것까지 있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사실이라면 대단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얘기지만 아직은 확인할 수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문 전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 관련 의혹에 대해선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느냐”며 단호하게 부인했다.

○ 100만 달러 의혹 수사도 탄력

검찰이 정 전 비서관에 대해 처음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적용했던 3억 원의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 수사도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검찰은 첫 구속영장과 달리 재청구한 구속영장에는 박 회장이 건넨 100만 달러와 노 전 대통령 관련 혐의는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법원으로 하여금 노 전 대통령과의 관련성까지 판단하게 하는 부담을 줄이고 일단 정 전 비서관의 신병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 전 비서관 수사는 노 전 대통령 혐의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라는 시각에 변함이 없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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