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곡 익히는데 6개월… ‘혼신의 한울림’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57분


19일 경기 고양시 홀트일산요양원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내외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장애인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의 단원들. 고양=연합뉴스
19일 경기 고양시 홀트일산요양원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내외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장애인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의 단원들. 고양=연합뉴스
■ 李대통령 울린 장애인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심장수술받은 막내

혼자는 노래 못해도

함께 하면 벙긋벙긋”

“내 모습은 온전치 않아 세상이 보는 눈은 마치 날 죄인처럼 멀리하며 외면을 하네요….”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장애인 33명으로 구성된 경기 고양시 홀트일산복지타운의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가 19일 복음성가 ‘똑바로 걷고 싶어요’의 2절 시작 부분인 이 대목을 부르는 순간, 그때까지 애써 눈물을 참고 있던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손수건을 꺼내고 말았다.

▶본보 20일자 A10면 사진 참조 李대통령, 장애아 합창에 눈물

대통령을 울린 ‘영혼의 소리로’는 국내 최초로 중증장애인만으로 구성돼 1999년 창단됐다. 창단 때부터 이들을 지휘해 온 박제응 씨(45)는 “한 곡을 가르치는 데 보통 6개월이 걸린다”며 “연습 때 5분 이상 집중하기 힘들기 때문에 끊임없는 반복으로 노래를 익히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합창단은 이렇게 한 곡 한 곡씩 배워 그동안 미국, 유럽, 필리핀 등 해외 공연 5차례를 비롯해 모두 260여 차례 초청 무대에 선 경험을 갖고 있다. 교회, 병원, 학교, 일반기업 등 이들이 선 무대는 모두 듣는 이들을 눈물짓게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관지 절제수술까지 받은 이강영 양(12)이 가냘픈 목소리로 독창을 선보이고 정신지체와 다운증후군을 앓는 이수훈 군(14)은 평생소원이던 지휘봉을 잡고 서울 호암아트홀 무대에 서기도 했다. 막내 최민기 군(6)은 희귀병인 ‘누난(Noonan)증후군’(성장이 멈춰지는 병)을 앓고 심장 수술까지 받아 아직 혼자서는 노래 한 곡을 부르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단원과 함께 무대에 서면 어눌하게나마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동안 해외 무대에 섰던 진규, 수훈, 정우, 영준 등 어린 단원 5명은 그 모습에 감동한 외국인 양부모를 만나 차례차례 입양됐다. 가장 나이 많은 단원 한대영 씨(51)는 가끔 단원끼리 다툼이 생길 때 조정자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이들이 매일 한두 시간씩 연습하고 정기적으로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독지가들의 도움 덕분이다. 중외제약 이종호 회장은 창단 이후 꾸준하게 후원해 주고 있고 정기공연 경비가 모자란다는 소식을 들은 방송인 정은아 씨도 1000만 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고양시의 미평건설 송영휘 회장도 합창단원들이 전국을 다닐 때 쓰라며 리프트 시설이 갖춰진 억대의 전세버스를 기증해 주었다.

독지가들의 후원이 적지 않지만 해외 공연 등에는 워낙 경비가 많이 들어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이다. 올해 6월에는 세계합창올림픽조직위원회가 주최하는 안톤 브루크너 국제합창대회에 공식 초청을 받아 출전할 예정이지만 아직 경비가 마련되지 못했다. 홀트일산복지타운 박꽃송이 사회복지사(34·여)는 “제대로 말하기도 힘겨워하는 단원들이 서로에게 의지해 노래와 합주를 익히고 있다”며 “합창단이 전해주는 감동의 노래를 더 많은 분께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20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제29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 영상 메시지를 통해 “장애인을 위한 시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이라며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 성숙한 사회가 바로 선진 일류국가”라고 강조했다.

고양=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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