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입시 ‘경시성적 제외’ 파장… 경시대회 독인가 약인가

  • 입력 2009년 3월 7일 02시 59분


《5일 서남표 KAIST 총장이 올해 치르는 2010학년도 입시부터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등 각종 경시대회 수상 실적을 반영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과학고 등에서는 적잖은 파문이 일고 있다. 서 총장은 경시대회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했지만 학생들이 경시대회를 통해 수준 높은 공부를 하게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경시대회는 과연 독(毒)인가, 약(藥)인가.》

▶본보 6일자 A1면 참조

“공교육 경시 사교육만 부채질” vs “우수학생 경시 통해 심층교육”

서 총장은 “일부 경시대회에서 상장이 남발되는 등 본래의 취지가 변질됐고, 경시대회 준비를 위해 초등학생까지 사교육을 받고 있다”며 “KAIST의 임무는 경시대회 성적보다 창의성과 잠재능력이 있는 학생을 발굴해 교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시대회 사교육 유발”=경시대회 입상 실적이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나 서울대 KAIST 등 상위권 대학 진학에 유리하다고 알려지면서 지원자가 크게 늘고 사교육 팽창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온 지는 오래됐다.

수학 과학 관련 올림피아드 응시자는 △2005년 1만5611명 △2006년 2만4895명 △2007년 3만2616명 △2008년 4만621명 등으로 늘고 있다.

KAIST의 이번 조치의 배경에는 사교육을 통해 경시대회를 준비한 학생들이 문제풀이에는 능하지만 창의성은 떨어진다는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경시대회 문제는 교사들이 학교 정규 수업에서는 가르치기 힘든 수준이어서 서울 강남 지역 학원가에 의존하는 학생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일반계 고교에서는 KAIST의 실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많다. 서울 여의도고 나승표 교감은 “매우 많은 학생이 경시대회 입상만 바라며 사교육을 받는 것이 현실”이라며 “하지만 문제풀이나 선행학습 위주의 경시대회 준비가 창의력을 얼마나 키워주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대변인도 “경시대회가 초등학생까지 선행학습에 몰입하게 하는 등 사교육 유발 원인으로 작동해 온 것이 현실”이라며 KAIST의 조치를 환영했다.

▽“수학 과학 누가 공부하겠나?”=그러나 경시대회의 어두운 면만 부각해 순기능을 외면하면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와 수학 과학 교과 외면 현상만 심해질 것이란 지적도 있다.

수학 과학 분야의 우수 인재를 선발해 심화학습의 기회를 제공해 온 공(功)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 실제로 경시대회 입상자들이 관련 분야에 진학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과학고 교사는 “일부 과열 현상이 있지만 각종 국제올림피아드에서 한국 학생이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것도 국내 경시대회가 우수 학생을 발굴해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제도’ 역할을 하는 덕분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늘교육 임성호 이사는 “공교육 내에서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우수 학생들을 선별해 양질의 교육과정을 제공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현실은 쉽지 않은 것이 문제”라며 “경시대회의 부작용은 줄이고 공교육 수준을 높이는 법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과학고 내에서는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경시대회 과목뿐만 아니라 일반 교과 내신에서도 앞선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올해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에 진학한 4명을 보면 모두 중학교 때부터 전국단위 경시대회에서 두각을 보인 학생들이다. A 군은 중등부 수학올림피아드 은상, 고등부 금상, 화학 동상, 천문 금상을, B 군은 중등부 수학 금상을, C 군은 중등부 수학, 화학에서 금상을 받았다. D 군은 물리 중등부 대상을 차지했다.

B 군과 C 군은 과학고 재학 중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서 각각 금상을 차지했다. 지난해 서울과학고 최태영 군(18)은 국제생물올림피아드에서 최초로 종합금상(Top Gold)을 차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왜 경시에 몰리나=과학고는 입학정원이 150명 안팎이어서 입시에서 내신등급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학생들은 내신 불리를 만회하기 위해 ‘경시대회 입상’이란 실적을 통해 특별전형으로 탈출구를 찾고 있다.

이런 현상은 다양한 학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전형을 사실상 강요하는 현행 내신 및 입시제도 문제 때문이란 것이 과학고들의 불만이다.

한 과학고 교사는 “대학들이 우수한 학생들을 뽑을 수 있도록 자율성을 줘야 국가경쟁력에도 도움이 된다”며 “이런 제도가 계속되면 경시대회 과열 등 부작용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획일적 전형은 부작용 불러=전체 신입생 정원의 18%인 150명을 학교장 추천과 입학사정관의 심사로 일반고 학생들 중에서 선발하겠다는 KAIST의 입시전형안은 나름대로 일반고 학생들의 진학 기회를 넓혀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전형 방법을 다양화한다면서 경시 성적을 무조건 제외하는것 또한 획일적 입시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교사는 “입시사정관을 적극 활용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제자리를 잡지 못한 심층면접만으로 KAIST가 원하는 창의성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청솔학원평가연구소 오종운 소장은 “기존의 입학사정관제의 한계로 제기돼 온 평가요소의 불투명성이 여전하기 때문에 KAIST의 새 전형이 내신 우수자의 입학 통로가 된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전형과 비슷한 경로를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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