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권 번호가 ‘EC119’로 시작하면 일단 의심을…

  • 입력 2009년 2월 26일 13시 35분


‘30대 178cm 키의 건장한 남자가 건네는 일련번호 EC119로 시작하는 만 원권을 조심하라.’

위조지폐가 계속 돌아다니고 있다. 제과점 여주인을 납치했던 30대 용의자가 쓰고 다닌 수사용 위조지폐가 사라지지 않고 시중에 떠돌다 발견되고 있다. 위조지폐는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잠잠 하는 듯 하더니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위폐를 식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련번호를 살피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위폐는 모두 같은 일련번호(EC1195348A)를 가지고 있다. 번호를 전부 외울 수 없다면 앞자리만이라도 기억하는 게 좋다. 유통업체들도 계산대 직원들에게 ‘EC119’를기억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경찰에서는 위폐가 진짜 지폐보다 폭이 1mm 넓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지폐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반지폐들도 습기가 차면 늘어날 수 있어 1mm 정도의 차이는 위폐 식별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

그 밖에 위폐는 전체적으로 색상이 거무스름하고 무지갯빛 홀로그램 기능도 없고 짙은 회색으로 보인다. 또한 세종대왕 그림 왼쪽에 위치한 숨은 그림도 위폐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울러 세종대왕 그림 오른쪽에 있는 은색 띠가 없고 오돌토돌한 점자 세 개도 밋밋하다.

정 씨가 위폐를 정상 지폐 속에 섞어서 사용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낱장 별로 살펴볼 필요도 있다.

경찰이 공개 수배한 용의자 정승희 씨(32)의 인상착의를 눈여겨 볼 필요성도 있다. 그는 긴 스포츠형 머리에 키 178cm 건강한 체격이고 양 어깨에서 종아리까지 잉어문신을 하고 있다. 정 씨에게는 현재 신고 보상금 500만원이 걸려 있고 조만간 1000만원으로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하니 눈썰미만 좋다면 정의도 이루고 거액도 챙길 수 있는 셈이다.

만약 위폐를 받았다면 경찰에 지체 없이 신고해야 한다. 보통 위조지폐의 피해는 위조범이 잡히지 않는 한 위폐를 받은 사람이 고스란히 떠안는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경찰이 위폐 제작 유통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기 때문에 경찰과 정 씨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 씨로부터 모조지폐 700만원을 받고 중고 오토바이를 판 박 모 씨는 위폐를 만든 경찰에서 피해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정 씨가 수사용 가짜 돈임을 알고 사용한 만큼 사기죄와 위폐 행사 죄를 추가로 적용할 방침”이라고 말했지만 피해자들의 보상여부에 대해선 함구했다.

경찰이 긴급하게 인명을 구하기 위해 사용한 만큼 면죄부를 받을 수도 있다고는 하나 한국은행 모르게 만들었다는 점은 또 다른 논란거리다.

영화 촬영처럼 위폐가 필요한 경우 제작 전에 한국은행에 신고해야 하고 사용 후에는 한국은행의 감독 아래 폐기해야 한다. 그러나 경찰은 한국은행의 사전승인 조차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통화 위조죄와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경찰이 위폐를 처음 만들었다는 2005년 당시 한국은행 발권국장을 맡았던 김두경 전국은행연합회 상무이사는 “내가 근무하는 기간 동안(1972년부터 2007년) 경찰이 위폐를 만들겠다고 한국은행에 알려온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김 이사는 경찰에 위폐를 만들 때 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칩 같은 전자 위치추적기를 붙이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지폐에 칩을 붙이면 추적할 수 있는 장치가 개발돼 있다. 아직 위폐에 시도한 나라는 없지만 가방에 추적 장치를 달아 놓을 필요 없이 돈에 직접 붙이는 것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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