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老 부양’의 비극

  • 입력 2009년 1월 6일 03시 00분


말기암 판정 64세 아들, 93세 부친 살해 뒤 자살 기도

“너 입원하면 난 어떡하냐” 꾸짖자 술김에 우발적 범행

60대 노인이 90대 아버지와 부양 문제로 다투다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북 포항남부경찰서는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존속살인)로 김모(64) 씨를 5일 붙잡아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김 씨는 3일 오후 5시 반경 포항시 남구 자신의 집에서 아버지(93)와 부양 문제로 싸우다 아버지를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3개월 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들 김 씨는 이날 아버지와 술을 마시면서 “입원 치료를 해야 하니까 더는 아버지를 돌보기 어렵다”고 하자 아버지가 “몸이 아픈데 술을 마시면 되느냐. 네가 없으면 밥을 먹기도 어려운데 입원하면 어떡하느냐”며 꾸짖자 순간적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포항에서 월 2, 3회 통원치료를 받아 온 김 씨는 최근 몸 상태가 많이 나빠지자 입원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아버지를 살해한 뒤 몇 달 전부터 취업 때문에 떨어져 사는 아들(30)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집으로 오라고 한 다음 자신도 스스로 목을 졸라 목숨을 끊으려다 아들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김 씨는 아들이 오기 전에 ‘미안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제사를 잘 모시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김 씨는 28년 전에 이혼한 후 아버지와 함께 살아왔다고 경찰은 전했다.

병원에 있는 김 씨를 조사한 경찰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홧김에 저지른 일이라고 진술했다”며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아버지에게 큰 죄를 지었다고 후회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노동과 어업 일을 하다 수년 전부터 건강 때문에 별다른 일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고령화사회가 진행되면서 노인이 노인을 모시는 ‘노노(老老) 부양’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으로 보고 정부와 자치단체 차원의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영남대 사회학과 김한곤 교수는 “앞으로 노인층에 접어드는 세대는 이전 세대와 부모 부양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 갈등이 잦을 것”이라며 “가정에서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므로 노노 부양을 위한 특별자원봉사제 같은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항=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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