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폭과 손잡았던가” 어느 엘리트의 추락

  • 입력 2008년 9월 24일 20시 08분


대기업 前자금팀장 수사… 조폭 5명 구속

대기업인 A그룹의 전 자금담당 이모(40) 씨의 살인청부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은 "조직폭력배가 먼저 이 씨에게 접근해 투자하라고 유혹했고 이에 따라 이 씨가 폭력배에게 180억 원을 맡긴 뒤 약 80억 원을 떼이게 되자 이를 보복하기 위해 다른 폭력배에게 살인을 청부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살인청부를 받은 폭력배들은 이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오히려 이 씨에게서 무려 5억 원을 뜯어낸 것으로 밝혀졌다.

본보 24일자 A12면 참조 ▶ 조폭 동원 채무자 살해청부 혐의 수사

서울경찰청 형사과는 A그룹 전 자금팀장 이 씨에게 접근해 사채업 등에 투자하라고 유혹해 거액을 챙긴 뒤 돌려주지 않은 조직 폭력배와 이 씨에게서 살인청부를 받은 뒤 살인에 실패하자 거꾸로 이 씨를 협박한 다른 폭력배 등 모두 5명을 구속했다고 24일 밝혔다.

▽조직폭력배가 먼저 접근=경찰에 따르면 A그룹 회장의 개인 자금을 관리하던 이 씨는 2006년 경 지인인 전 연예기획사 대표 안모(41)씨의 소개로 박모(38)씨를 알게 됐다.

폭력조직인 대전사거리파 전 조직원인 박 씨는 이 씨가 거액의 자금을 관리한다는 사실을 알고 사채업, 사설경마 등에 투자해 돈을 불려주겠다고 권유했다.

유혹에 빠진 이 씨는 2006년 8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모두 180여억 원을 박 씨에게 맡겼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오히려 80여억 원을 떼인 이 씨는 자신이 관리하던 돈을 몰래 유용한 사실이 드러날까 고민하다가 안 씨와 의논한 후 지난해 5월경 다른 폭력조직인 모래내파 조직원 정모(37)씨에게 박 씨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

정 씨는 일당 1명을 시켜 지난해 5월 2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길거리에서 오토바이 '퍽치기'를 위장해 흉기로 박 씨의 머리를 때려 살해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이 씨는 다시 윤모(39)씨에게 살인을 청부했다. 윤 씨는 지난해 7월 일당 1명과 함께 박 씨를 납치해 전북 익산의 한 아파트에 감금했다. 그러나 윤 씨는 박 씨가 "이 씨가 살인 청부한 것을 약점으로 잡아 협박해서 같이 돈을 뜯어내자"고 설득하자 박 씨를 풀어줬다.

정 씨와 윤 씨는 살인청부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오히려 이 씨를 협박해 각각 3억8000만원과 8000만원을 받아내고, 박 씨 역시 이 씨를 다시 협박해 4000만 원을 빼앗았다.

▽자금 성격도 규명하기로=경찰은 지난해 12월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나서 박 씨와 정 씨, 윤 씨 등 5명을 검거해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달 3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 씨와 안 씨에 대해서는 보강 수사를 마치는 대로 다시 영장을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사건이 불거지자 회사를 그만뒀다.

경찰은 이 씨가 운용한 자금에 대해서는 A그룹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조성 경위 등에 대해 추가로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A그룹 회장이 보유했던 개인 자금의 규모는 정확히 알지 못하며 그를 소환할지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룹 총수의 개인 자금을 직원이 차명계좌로 관리해온 데 대해 A그룹 관계자는 "회사 대주주는 증권거래법상 공시 의무가 있어 회사에서 개인자금 관리를 해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룹 회장이 1990년대에 이 자금을 상속받을 당시 차명 계좌로 물려받은 후 미처 실명화하지 못했으며 최근 세무당국에 자진 신고했다"고 해명했다.

김기현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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