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과학, 논술을 만나다

  • 입력 2008년 9월 8일 02시 54분


《환경파괴가 날로 심해지고 생명공학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오늘날, ‘생명관’에 대한 관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자연은 모든 생명체의 안식처다. 안식처의 위기는 바로 생명의 위기다. ‘생명을 살리자’는 위기의식은 곧 ‘지구를 살리자’는 생태학적 위기의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생태학적 위기가 일어난 것은 인간이 생명의 의의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의 적자생존, 약육강식 사상에 익숙한 사람들은 폭군처럼 지구를 착취하면서도 그것이 자연의 방식이며 정당한 해동이라고 우긴다. 자연을 이용하는 인간의 지식을 예찬하여 ‘지식은 힘’이라고 외쳤던 베이컨의 주장에서 이미 위기는 예고됐던 것이다.

생명공학, 로봇공학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면서부터는 인류가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성의 근거로 확신했던 ‘스스로 생각하는 자’로서의 모습조차 무너지고 있다. 인간 유전자 조작이 일으키는 진정한 문제는 생명에 대한 신비성이 사라진다는 애매모호한 측면이 아니라, 인간을 유전자의 종속 변수로 생각함으로써 인간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데 있다. 즉, 인간은 자율성을 가진 존재이고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인데, 바람직한 유전자를 가지고 바람직한 인간을 만들겠다는 발상부터가 인간의 주체성과 자유 의지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유전자 중심-기계론적 서양사상 vs 자연-인간의 공존 찾는 동양사상

‘생태계 중병’ 지구 살릴 처방은 어느 쪽?

논술에 등장하는 생명관, 세계관… 위기에 빠진 지구를 지켜줄 것은?

○ 서양의 생명관

① 생기론에 기초한 생명관

동양에서는 생명을 기(氣)의 통합체로 이해한다. 서양에서도 이와 유사한 ‘생기론(生氣論)’이 있었는데, 25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에 대한 고찰 결과, 동식물에게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생명 요소가 있다고 말하면서 이를 ‘생기’라고 불렀다. 그의 스승이었던 플라톤은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인간에게는 사물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이성이 있는데, 이성이 사람과 동물을 구분한다는 이러한 생각은 오랫동안 서양철학에 유전됐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말한 파스칼의 명제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역사나 문화에 따라 생기는 여러 가지로 이해된다. 생명의 귀(貴)함과 신비를 표현하는 어떠한 것도 생기론의 일부가 된다. 유기물도 그 한 예인데, 근대까지도 유기물은 오직 생명체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물질로 이해되었다. 가령 포도당은 포도에서만 만들어지고, 젖산은 젖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러나 1828년에 독일의 화학자 뵐러가 무기물질인 시안산암모늄을 가열하여 유기물질인 요소를 실험실에서 만들어냄으로써 유기물의 정의와 함께 유기물에 기초한 생기론은 타격을 받았다.

② 기계론적 생명관

17세기에 이르러 ‘생물=정교하게 설계된 기계’라는 단순 명료한 견해가 생기론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그의 저서 ‘방법서설’ 제5부에서 ‘인간을 제외한 모든 동물들은 특별한 정신적 자각 없이 몸을 구성하는 각 기관의 장치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와 같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인간은 마음, 즉 언어를 사용하여 복잡한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물질로만 구성된 다른 동물들과 구별된다고 보았는데, 이렇게 물질과 마음을 철저히 독립적인 것으로 구분한 근대 서구인들의 사조를 가리켜 ‘이원적 생명관’이라고 한다. 이원론은 근대 과학과 의학의 탄생을 선행하고 이끌었다.

훗날 생화학의 발전으로 효소에 관한 이해가 깊어지고, 유전학의 발전으로 유전자와 게놈에 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생명 현상을 물리적, 화학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거나, 분자 수준의 지식을 통해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기계론적 사상이 점점 강해졌다.

③ 유전자 중심의 생명관

닭과 계란 중에서 어느 쪽이 ‘닭’이라는 생명체의 진정한 실체일까? 30여 년 전 ‘이기적 유전자’를 썼던 리처드 도킨스라면 “계란”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닭의 모든 행동이 유전자의 보존과 증식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수명을 다하는 성체와는 달리 반영속적으로 보존되는 유전자, 즉 염기서열 속에 들어 있는 정보의 스스로 보존되려는 의지와 논리가 생명체의 본질이라고 말할 것이다.

크레이그 벤터라는 사람은 도킨스보다 한 술 더 떠서, 생명체가 진화를 거듭하여 고도로 지적인 생명체가 된다면 결국 디지털 정보의 형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유기적 신체를 갖고 있는 현재의 인류는 멸종한다는 것인데, 그 대신 기계의 몸과 디지털화된 유전 정보를 갖춘 새로운 정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 동양의 생명관

① 불교의 생명관

인간은 모든 피조물의 지배자인 것처럼 생명을 파괴하고 있다. 동물을 실험 대상이나 오락거리로 간주하는 모습이 바로 그 예다. 생명의 존엄성이나 생명의 유일성을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내 생명을 보전하고 내 몸만 편안하고 건강하면 된다는 인간 중심적인 생각 때문에, 다른 생물들도 죽음과 폭력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사실 지구상의 모든 구성단위들은 그 수에 상관없이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끊임없이 변화하며 요동치는 유기적 관계성을 보이는데, 원인이 결과가 되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하나의 그물망에 비유할 수 있다.

동양사상, 특히 불교의 ‘연기설’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든 사물이 하나의 거대한 그물망 위에 있으며 따라서 서로 독립적일 수 없다고 가르친다. 그물 위에서는 그 어떠한 변화라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되어 주변이나 중심을 논할 근거가 없다. 따라서 사람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머리가 신체의 중심이 아니며, 먼저 있던 것도 나중에 있던 것도 없고, 보다 가치 있는 것도 하찮은 미물도 없다. 즉 불교는 모든 생명의 가치가 동등하다고 말한다. 인간이라고 해서 보다 중요하지 않으며 미물이라고 해서 사소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② 총체론적 생명관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Gaia·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장회익의 ‘온생명’, 한면희의 ‘기(氣)중심적 온가치’ 등의 개념들은 총체론적 생명관으로 분류된다. 이중 ‘가이아’ 이론은 서양학자의 이론이지만, 사실상 서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과 총체론적 생명에 관한 개념이 동양적 사상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 때문에 동양적 사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총체론적 생명관의 특징은 생태계를 구성하는 개별적 생명체들만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우주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개별적 생명체만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데 있다. 가령 나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도 나와 같은 생명이다. 그러나 세포가 나로부터 분리되면 더 이상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반대로 세포들이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면 ‘나’라는 생명 역시 살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몸은 60조 개의 생명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이며, 나는 그들이 만든 온생명이다. 생태계도 마치 이와 같다는 것이다.

③ 대안으로서의 동양적 생명관

유전자 복제와 생명공학은 결국 생명과 인간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기존의 가치관으로 해결할 수 없는 도덕이나 윤리적 딜레마에 봉착해서 사회 구성원들이 정신적 아노미(anomie·무법 무질서 상태) 현상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모든 생명의 가치를 동등하게 보는 동양적 생명관은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즉 인간이 창조한 생명이거나 복제인간으로 태어날지라도, 모든 생명을 잇는 인연의 한 점으로서 부족하지 않다면 그 가치와 존엄성에 대하여 하등 의심할 이유가 없다.

다른 대안도 있다. ‘자연의 진화를 통해 출현한 인간이든, 과학 기술에 의해 유도된 진화이든 모든 과정은 창조주 신에 의해 이미 계획된 것’이라고 믿는 신의 섭리에 근거한 생명관 역시 다가올 아노미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을 것이다.

○ 한의학에서 보는 생명관

한의학의 생명관은 기계론적 생명관이 완전한 이론이라고 볼 수 없는 근거로 서양 의학의 한계를 든다. 신체의 각 부분을 정상화해도 완벽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다든지, 실험실에서 나타난 약물 효과가 생체 내에서는 다르게 나타난다든지, 사람에 따라서 치료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든지, 완치되었다고 할지라도 재발해서 악화된다든지 하는 등 기계적 생체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기계적 생체에 관한 충분한 정보에도 불구하고 만족할 만한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는 기계적 부품에서 발견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생체나 생태계와 같이 수많은 구성단위를 갖는, 그래서 고려해야 하는 변수가 많은 대상의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그런 정보를 얻기 어렵다.

그 신비한 ‘어떤 것’을 전제하는 한 생명은 생기론의 관점에서 이해되는 것이며 한의학에서 말하는 치료의 출발점도 바로 여기다. 즉, 신체의 어떤 부분에서 나타나는 이상(異常)이란 신체 전체에서 발생한 어떤 이상의 발현으로 보며, 부품이 아니라 전체를 치료의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다.

한의학적 생명관의 가치는 특히 새로운 질병들이 나타날 때 잘 드러난다. 한의학에서 바라보는 생명관을 ‘공존의 생명관’이라고 부르는데, 자연의 모든 생명체와 인간이 공존을 도모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그 근거를 살펴보기 위해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을 예로 들겠다.

현대 의학의 역기능으로서 슈퍼 박테리아의 출현을 들 수 있다. 인간을 공격하는 세균들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여 이들을 죽일 수 있는 강력한 항생제가 개발되는 동안 세균들 중에서도 항생제에 내성을 갖춘 새로운 변종들이 태어나면서 결국 어떤 항생제로도 죽일 수 없는 슈퍼 박테리아가 출현했다. 공존이 아니라 박멸을 선택한 결과였다.

서양 의학이 병원체에 의한 감염 염증 종양 등을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반면, 한의학은 이러한 증세를 질병의 원인이 아니라 음양과 기혈(氣血)의 부조화에 의한 결과라고 이해한다. 따라서 세균과 바이러스와 사람 간의 힘의 조화와 균형이 깨진 원인을 찾아, 병원체의 수가 많을 때에는 억제하고, 평소에는 병원체에 방어할 수 있는 면역력을 높여주는 방향으로 처방한다.

○ 생태중심주의의 생명관

생태학은 살아있는 유기체들이 주변 환경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다룬다. 인간의 생태적 기반이 농작물이나 가축 등 소수 생물에 국한되지 않고 생태계라고 하는 통합된 조직 전체에 있다고 보는 것이 특징이다. 관련 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생태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조직이다. 만일 우리가 미래에도 잘 살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하딩)

“만일 인간이 그 자신의 한 부분으로 되어 있는 삶의 복잡하고 미묘한 거미줄 같은 연결망에서 중요한 매듭을 구성하는 유기체를 별 생각 없이 제거해 버린다면, 인간은 궁극에 가서는 자기 자신까지도 파괴하고 말 것이다.”(두보스)

환경이나 생태를 다룰 때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윤리적 입장이 제시된다. 자연 중심적 윤리, 생명 중심적 윤리, 인간 중심적 윤리가 그것이다.

자연 중심적 윤리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상호 유기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생물뿐만 아니라 자연환경 역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레오폴드의 ‘대지윤리(land ethics)’에 따르면, 인간 사회는 은혜와 보답이라는 도덕적 행동을 기초로 구성된 공동체다. 이러한 도덕적 기준을 최대한 확장하면 인간을 돕는 모든 자연 구성 요소를 포함한 거대한 도덕 공동체를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이 공동체를 보존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지고 있다. 이것이 매우 포괄적인 대지 윤리다.

인간 중심적 윤리는 생태학적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인간의 도덕적 의무와 도덕적 권리에 대한 신중하고 합리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행동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지극히 중대하고도 미묘한 결과를 널리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특정 종의 멸종, 자원의 고갈, 오염, 급속한 인구 증가 등 해롭고 위험한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오직 인간에 의해서만 통제되고 예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에게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 국소주의와 전일주의

① 국소주의와 기계론적 생명관

전통적인 서구 철학이 그렇듯이 서구 과학의 문제는 사물을 분석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이를 ‘국소주의’라고 부르는데, 가령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하여 생체를 여러 요소로 분해하고 이것들마저 다시 작은 단위로 쪼개어 더 쪼개지지 않는 최소한의 단위를 찾아내 연구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 단위가 생명 현상에 서로 독립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단위 연구로부터 얻어진 지식의 산술적인 합으로부터 생명의 본질을 알 수 있다는 기계론적 생명관을 바탕으로 한다. 시계를 예로 들면, 부품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으면 당연히 시계를 조립할 수 있다는 생각과 같다. 이는 서양 의학이 수백 가지 전문 분야로 세분화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말을 빌리면 “수학의 법칙들이 실재에 관해 언급하는 한 그것은 확실하지 않고, 그것들이 확실하다면 실재를 가리키지 않는다.” 서양 의학의 세분화 과정도 오히려 치료에 관한 어떤 중요한 정보를 놓치게 할 수도 있다.

② 전일주의와 시스템적 생명관

인체와 지구의 구성요소는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끊임없이 변화하며 요동치는 유기적 관계성을 보인다. 이들이 만드는 병렬적 그물망을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시스템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은 구성요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전체의 특성이다. 이 특성은 부분 사이의 상호작용과 연관성에서 저절로 만들어진다. 물론 시스템이 분리되어 개별 요소로 환원되면 이러한 특성은 사라진다.

시스템을 통해 생명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신비한 요소가 만들어진다는 생기론을 가리켜 ‘시스템적 생명관’이라고 부른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례를 들어보자. 축구장 응원석에서 파도타기가 시작됐다. 통솔자가 없어도 어느 시점이 되면 모든 사람이 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인터넷망도 한 예가 될 수 있다. 서로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같은 인터넷망에 접속해서 시시각각 특정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의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간다.

사람의 의식은 어떠한가? 어느 뇌세포도 다른 뇌세포에 종속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는 항상 어느 한 주제에 집중하며 우리의 의식이 깨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그 많은 뇌세포가 하나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을까? 벌레와 덩치 큰 동물의 세계에서도 수가 많으면 지능적인 행동을 보임을 알 수 있다. 많은 수의 구성요소와 그들 간의 연결망에서 개체로부터 예상할 수 없는 형질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창발’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시스템은 분석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이해될 수 없고 부분들이 갖고 있는 특성은 본질적이라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전체라는 맥락 속에서만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백광현 ㈜엘림에듀 대표 집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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