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시위 한다더니 거리 무법자로” 시민들 분통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5월 28일 03시 01분



■ 촛불집회 갈수록 과격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대는 27일 밤에도 집회가 끝난 후 도로를 불법 점거했다. 나흘째 거리 시위가 계속된 것이다.

이날 서울 청계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1200여 명의 시위대는 오후 9시 20분경 무교동∼을지로∼명동 방향으로 차도를 점거한 채 행진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시위대의 과격 행동을 선동하는 게시물이 퍼져나가고 있다.

▽무법 도심, ‘뿔난’ 시민=시위대가 밤마다 종로 을지로 퇴계로 등 시내 중심가의 교통을 마비시키자 주변 상인과 시민의 반응이 싸늘해지고 있다.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는 행진을 막는 경찰에게 “비폭력 시위대를 막는 이유가 뭐냐. 평화시위를 보장하라”며 맞서고 있다.

26일 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회사원 이모(34) 씨는 “폭력을 쓰지 않았으니 평화시위라고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명분이 불법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종로 거리는 ‘평화시위’라는 말이 무색했다. 27일 새벽에는 일부 시위대가 지하철역 입구 지붕에 오르려고 쓰레기봉투 더미를 밟으면서 터져 나온 오물이 인도를 뒤덮었다.

거리를 막아선 시위대를 향해 버스 운전사가 경적을 울리자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액세서리를 파는 한 노점상은 평소보다 일찍 자리를 접으며 “15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를 하면서 온갖 집회를 봐왔지만 시끄러워야 먹힌다는 생각은 여전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온라인에서도 불법 시위=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게시판인 ‘아고라’ 등에는 선동적인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쇠고기 수입만 반대해서는 5년 내 지랄이다. 쥐박이 물러가라” “1001 기동단 투입되면 짱돌, 파이(쇠 파이프), 꽃병(화염병) 들어야 한다”는 식이다.

일부 누리꾼은 허위 사실을 퍼뜨려 온라인 여론을 자극한다.

시위대가 거리를 점거했던 27일 오전 1시경에는 “다섯 살짜리 어린애도 전경 곤봉을 맞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2명은 의식불명. 공산국가가 따로 없다”는 등 사실과 다르거나 자극적인 글이 올라왔다.

촬영 상태가 좋지 않은 동영상이나 사진이 퍼지면서 근거 없는 의혹까지 나온다.

일부 누리꾼은 이날 오전 인터넷 개인방송 사이트인 ‘아프리카’를 통해 촛불집회 생중계를 보다가 앰뷸런스가 화면에 나오면서 5분간 끊기자 “경찰 등 정부기관에서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기 위해 전파를 차단했다”고 주장했다.

와이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KT 관계자는 “이날 오전 1시부터 7시까지 시스템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작업을 해 간헐적으로 서비스가 중단됐을 뿐”이라고 밝혔다.

▽보수·진보 대립 ‘불씨’도 다시=촛불집회가 순수한 문화제에서 과격한 시위로 변하자 보수와 진보단체의 갈등도 다시 격화되고 있다.

촛불문화제를 주최하는 ‘광우병 위험 미국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는 27일 “연일 수천,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명박 정부에 준엄한 경고를 하고 있으나 경찰은 시민을 폭력 연행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날 경찰의 출석 요구서를 받은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공동상황실장은 “배후가 없으니 당장 눈에 띄는 촛불문화제 주최자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인 만큼 부당한 출석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30여 개 보수단체가 참여한 국가쇄신국민연합은 “학생운동단체 ‘다함께’가 ‘피가 잔뜩 묻은 옷을 입은 채 구급차에 실려 가는 시민, 방패에 이마가 찢긴 여고생, 피 흘리며 기절한 대학생 등이 목격됐다’는 등 사실을 왜곡한 유인물을 배포했다”며 경찰청에 고발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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