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대입논술, 이것만은 알아두자]2008 대입논술 해설

  • 입력 2008년 4월 14일 03시 00분


※ easynonsul.com 및 스카이에듀 홈페이지(www.skyedu.com)에 풀이 및 동영상 해설

■2008학년도 중앙대 인문계 정시 논술 해설

(문제는 중앙대 홈페이지에서 내려 받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 주제 관련 통계적 분석 능력 요구

2008학년도 중앙대 인문계 정시 논술의 주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신뢰입니다. 2008학년도 고려대 정시 논술도 공교롭게 같은 주제를 다뤘습니다. 출제 교수들이 최근에 학자들 사이에서 많이 논의되면서 통계적 분석이 가능한 주제를 찾다 보니 서로 주제가 겹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앙대 문제가 고려대 문제보다 지문 수도 많고 표도 복잡하여 난도가 더 높아 보입니다. 특히 문제 4-2는 수리 논술적 성격의 문제인 만큼 난도가 높습니다. 요즘 논술의 대세는 문제 안에 통계자료 분석을 포함하는 형태입니다. 따라서 인문학적 주제보다는 사회적 주제로 쏠려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중앙대 문제도 마찬가지 경향을 나타냅니다.

문제 1

(가)∼(라)의 논지를 모두 포함하는 요약문을 하나의 완성된 글로 작성하는 문제입니다. 요약문제는 대개는 긴 지문 하나를 요약하는 것인데, 이 문제는 특이합니다. (가)는 공동체의 응집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인 간에 ‘강력한’ 유대보다는 ‘약한’ 유대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강력한’ 유대는 집단 내부의 응집력은 강화시키지만 집단 간의 결속에는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람들은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그 신뢰의 공백을 마피아나 사적인 연줄로 메운다고 설명합니다. (다)는 후기 산업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가상공동체에 대한 내용입니다. 가상 공동체는 대부분 약한 유대에 근거해 있으며, 수많은 사람 간의 유대관계를 확장 전파하는 역할을 합니다. (라)는 1차적 관계에 의존하는 기업운영이 재벌뿐만 아니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나타난다는 내용입니다.

서로 다른 제시문을 하나의 완성된 글로 요약하기 위해서는 제시문 전체를 포괄하는 주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 제시문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는 ‘개인 간의 유대’입니다. (가)와 (나)는 한계와 문제점을, (다)와 (라)는 긍정적 의미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 주제는 개인 간의 유대가 갖는 의미와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가)와 (나)를 통해 개인 간의 유대가 갖는 한계와 문제를 논하는 한편, 그것이 갖는 긍정적 의미를 (라)를 통해 먼저 다룬 다음, 새로운 유형의 공동체인 인터넷 공동체에서 개인 간의 유대가 갖는 의미가 나타난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문제 2

(마)의 주인공이 느끼는 고독감을 극복하기 위해 주인공과 우리 사회가 기울여야 할 노력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마)의 상황에서는 (가)에서 언급된 ‘강력한 유대’는 물론 ‘약한 유대’도 없습니다. 모두가 철저하게 혼자입니다. 서로에게 짐을 부탁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만큼 불신이 가득합니다.

이는 (가)와 (나)의 상황과 유사합니다. 즉 약한 유대가 널리 확산되지 못해 응집력이 와해된 공동체로서,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남을 결코 믿지 않는’ 풍조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약한 유대를 형성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인공도 문제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이미 고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고독감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아갔으나 예상 밖의 모습을 발견하고 당혹해합니다. 이로써 평소 주인공의 삶이 세상과 단절되어 있을 거란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인공은 일상적인 삶에서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는 그런 삶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주인공은 자신의 고독감을 풀기 위한 개인적인 동기로 사람들과 접촉하려 했습니다. 여기에 다른 사람들의 고독에 대한 고민은 없었습니다. 사회적 신뢰는 상호 작용의 결과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관심은 자신에게로 향해 있었을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주인공 스스로 타인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문제 3

(나)의 입장에서 (라)의 주장을 평가하는 문제입니다. (나)는 ‘사적인 연줄망’에 의존하는 행동을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서 발생한 부작용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라)는 벤처기업의 운영에 있어서 ‘사적인 연줄망’이 이용되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으니 (나) 입장에서는 (라)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것 같네요. 그러나 (라)의 상황이 제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일까요?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혹시 제도에 대한 신뢰 여부와 무관하게 벤처기업만의 고유한 특수성이 (라)와 같은 현상을 낳은 것은 아닐까요?

벤처기업이 살아남아 성공할 확률은 10%도 안 될 만큼 매우 희박합니다. 벤처기업과 거래를 하는 다른 기업은 거래에서 발생할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해당 벤처기업에 대해 가능한 한 완전한 정보를 얻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기업이 아니라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벤처기업에는 경영상의 장애로 작용할 것입니다.

벤처기업은 이러한 장애를 사적인 연결망을 통해서 돌파하고자 합니다. 해당 기업인의 학교 동창한테 물어본다거나, 친척에게 물어본다거나 하는 방식을 통해서 말이죠. 벤처기업의 이런 행동양식은 넓은 의미에서는 ‘기존 제도에 대한 신뢰 부족’에서 나오는 현상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만 ‘기존 제도의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나온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기존 제도 속에서는 벤처기업이 기업 운영에 필요한 충분한 지원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입장에서 (라)를 평가한다면 ‘기존 제도의 불완전함’을 반영하는 현상이자 제도 보완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논의가 가능합니다.

문제 4-1

<표 1>에 나타난 사회적 자본의 4대 기본 요소와 인적 네트워크 활용도의 연관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문제입니다. 일단 <표 1>의 값들 사이에 어떤 규칙성이 있나 찾아보도록 하죠. 표를 보면 신뢰성이 높으면 당연히 진실성이 높은 것으로 나오고 있네요. 결국 신뢰성이 큰 나라는 진실성이 크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신뢰성이 높은 나라부터 나열하면 C, A, F, D, E, B입니다.

한편 연대성과 개방성은 들쭉날쭉해서 어떤 규칙성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표 2>의 자료를 이용하여 인적 네트워크 활용도가 큰 나라부터 나열하면 C, A, F, D, E, B의 순서로 <표 1>에서 언급한 나라의 순서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뢰성과 진실성이 크면 인적 네트워크 활용도가 크다’고 결론내릴 수 있겠습니다. 동시에 4대 기본요소 중 나머지 요소인 연대성과 개방성에 대해서는 ‘인적 네트워크 활용도와 별 상관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 4-2

다섯 개 나라의 ‘인적네트워크 활용도 점수’와 ‘사회 부패성 점수’를 활용하여 표에 나오지 않은 나라 W의 ‘인적네트워크 활용도 점수’를 추측해 보라는 문제입니다. 물론 W의 ‘사회 부패성 점수’는 주어집니다. 다섯 개 나라의 수치를 활용하라는 얘기는 그 자료 속에서 어떤 ‘규칙성’을 찾아내라는 요구입니다. ‘규칙성’만 찾아낸다면 그 규칙성에 주어진 ‘사회 부패성 점수’를 대입해서 원하는 값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표의 자료를 순서대로 정리해보면 인적네트워크 활용도 점수가 클수록 사회 부패성 점수가 낮게 나옵니다. ‘인적 네트워크 활용도 점수’ 크기는 H, K, I, J, G의 순서이며 그 값은 78, 74, 60, 55, 43입니다. 한편 ‘사회 부패성 점수’는 52, 68, 78, 80, 87입니다. 이 값을 보면서 일단 쉽게 떠올리는 것은 기울기가 음수인 Y=aX+b(a<0) 형태의 일차함수식입니다. 다섯 개의 점 H(78, 52), K(74, 68), I(60, 78), J(55, 80), G(43, 87)를 근사하는 직선의 방정식을 찾아서 x=50을 대입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기울기 a를 찾는 것인데요, 위 다섯 개 점 중 임의의 두 점을 서로 연결했을 때 생기는 직선의 기울기를 전부 구해서 그 평균을 구하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이를 위해 총 10개의 직선의 기울기를 구해야겠네요. 예를 들어 의 기울기는 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상당히 번거로워 보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즉 이것 말고 다른 규칙성은 발견할 수 없을까요?

모든 나라의 ‘인적네트워크 활용도 점수’와 ‘사회 부패성 점수’를 더해 봅시다. 더해 보면 G=130, H=130, I=138, J=135, K=140이 나옵니다. 상당히 비슷한 값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각 나라의 ‘인적네트워크 활용도 점수’+‘사회 부패성 점수’는 특정 값을 중심으로 변화한다는 가정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특정 값’을 위 값들의 평균값 135로 정하는 방법을 취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면 사회 부패성 점수가 50인 나라의 ‘인적네트워크 활용도 점수’는 135-50=85로 정할 수 있겠습니다. 앞의 방법보다는 훨씬 간단해 보입니다.

<끝>

이현 스카이에듀 대표

■2008학년도 숭실대 인문계 정시 논술 해설

(문제는 숭실대 홈페이지에서 내려 받을 수 있습니다.)

공통-계열별 문제 각각이 별도주제-내용

숭실대는 2008학년도부터 논술을 도입했습니다. 인문계 수시 논술과 정시 논술은 모두 인문 자연 공통문제 1문항과 인문계열 2문항이 출제됐습니다. 형식적인 면에서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공통문제와 계열별 문제는 별도의 주제와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계열별 문제는 문항 두 개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정시 논술 3문제는 각각 600자, 500자, 700자의 답안을 요구해서 총 1800자 분량을 쓰도록 했습니다. 평가의 변별력은 분량이 길고 배점도 높은 3번 문항에서 높게 나타났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 1

세 제시문을 활용하여 사랑과 결혼의 관계를 분석하는 문제입니다.

우선 (가)는 일반적인 사회적 통념인 ‘낭만적 사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성 간의 사랑은 배타성이 전제가 되지요. 그래서 사랑은 ‘전폭적인 몰입’을 요구합니다. 이런 사랑은 다른 어떤 인간관계로도 대체될 수 없기에 연인이 없는 젊은이는 무언가 결핍된 느낌을 갖게 됩니다. 반대로 이런 순수하고 낭만적인 사랑에 빠져드는 사람은 메마른 현실을 극복할 수 있고, 삶의 모든 영역이 충만해진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는 순수한 사랑을 다루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조건 없는 순수한 사랑이 가능할까요? 흔히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라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사랑은 그렇지 못합니다. 연인들의 다툼은 서로의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생겨납니다. 이렇게 보면 사랑도 일종의 거래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질적 거래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기대의 충족이 요구되기 때문이지요. (가)의 입장에서는 사랑과 결혼의 관계는 원인과 결과가 됩니다. 즉 사랑해야 결혼하는 것이지요. 흔히 우리가 바라고 있는 사랑이지만, 현실적이지 못하고 통념적으로만 작용하는 사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진화심리학을 통해 사랑의 전제 혹은 바탕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심리를 진화론의 연구를 통해 밝히는 새로운 학문 분야입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도 진화의 산물로 보는 시각으로, 인류가 출현한 뒤 대부분의 진화가 이뤄졌던 원시시대의 상황에서 인간 심리를 유추해내는 학문입니다. 제시문은 사랑을 바로 이런 진화론적인 시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남성은 번식력과 종족보존 능력이 뛰어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선택합니다. 여성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남성에게 아름답게 보이도록 진화했습니다. 반대로 여성은 남성의 외모에는 크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늙고 추한 남성도 생식력에서는 차이가 크게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성은 다양하고 많은 파트너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려 합니다. 따라서 많은 여성을 만나려 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반대로 여성은 과거부터 육아를 담당해왔기 때문에 신중하게 남성을 고르려는 심리가 있습니다. 이런 생물학적 차이가 남성을 사랑에 적극적이게 만든 반면, 여성은 신중하게 만들었다는 시각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일부일처제의 결혼 제도는 본능적 욕구와 모순을 일으키는 제도일 뿐입니다. 즉 (나)는 사랑과 결혼의 불일치가 있을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에서는 결혼에 있어서의 ‘사회적 조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결혼할 때 같은 학력을 가장 선호하는 집단은 초졸 이하 집단과 대졸 이상 집단입니다. 특히 대졸 이상의 고학력 여성 계층은 고학력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고학력 여성의 교육 동질혼은 배우자의 학연을 포함한 사회적 자본을 극대화하려는 행위입니다. (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이지요. 사랑이 결혼에 전제되는 조건의 전부는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는 결혼을 할 때 학력과 같은 다른 조건을 따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도 사랑과 결혼은 등식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가)는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사회적 통념을, (나)는 사랑이라는 본성과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일치를, (다)는 결혼이라는 행위에 담긴 현실적 이해관계를 각각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항은 ‘열린 논술’로 사랑과 결혼의 관계 분석에는 특정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가)의 사랑과 결혼의 일치를 바람직하게 보지만, 현실적으로 (다)처럼 서로의 배경에 끌려 결혼을 하는 경우도 많으며 사랑에는 (나)와 같은 성격도 있어 사랑과 결혼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식의 논술이 가능합니다.

문제 2

(A), (B)를 참조하면서 (라), (마)를 읽고 기록 행위의 가치와 한계에 대해 논술하는 문제입니다. (A), (B)의 공통 주제는 ‘역사’입니다. (A)는 역사의 서술방식을 다룹니다. 역사는 문학과 달리 지나간 사실을 재현합니다. 사실을 지나간 듯이 서술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역사 서술에서 문학의 서술방식이 차용됩니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묘사, 즉 ‘현재화’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역사는 허구화가 됩니다. 반대로 문학 역시 역사의 서술방식을 빌립니다. 서사는 역사를 서술할 때 과거의 재현과 현재화의 두 방식을 모두 사용하며, 두 방식이 교차되며 실재가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B)에서는 ‘기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개인의 기억은 추억이 되고, 집단의 기억은 역사가 됩니다. 망각과 반비례인 기억은 조작되기 쉽습니다. 공식기억인 역사는 결과적으로 제도화된 망각에 가깝습니다. 역사교과서 등의 ‘관제 기억’과 대립되는 것이 민중들의 사적 기억입니다. 이런 민중들의 기억은 체계화되지 못하고 흩어져 있지만, 체제를 전복하는 혁명의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공식기억과 대항기억은 이처럼 지배층과 민중들의 ‘기억을 둘러싼 투쟁’의 무기로 활용됩니다.

(라)는 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소설의 가치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료집과는 또 다른 의의를 갖는 소설들은 죽은 과거를 살아있는 현재로 가져옵니다. 사료집에 드러나지 않는 피해자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A)에서 이야기하듯 역사의 빈틈을 메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허구화는 (B)에 따르면 망각의 폭력에 맞서 대항기억으로 기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와 허구가 결합된 이런 소설들은 자칫 역사를 허구화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마)는 임진왜란 때의 잊혀진 전투를 후손들이 되살린 사례를 제시합니다. 20세기 초반, 곽재우의 후손들은 이 전투의 의의를 다시 기록합니다. 공식기억에서 잊혀졌던 싸움을 공식기억으로 되살려낸 것입니다. 문제는 화왕산성 수비가 피아 간에 별다른 접전이 없었던, 즉 큰 의미가 없었던 피란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잊혀진 기억인 이 전투가 ‘동고록’ 출판으로 집단 기억으로 되살아나고 큰 의의가 있는 사건인 것처럼 왜곡됩니다. 해석자인 문중 후손들의 주관이 반영된 것이지요. (B)에서 얘기했던 대항기억이라는 것이 관제기억이 되면서 뒤틀림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왜곡은 (A)에서 다룬 ‘허구의 역사화’에 해당합니다.

문제 3

(A), (B)를 참조하여 (바), (사), (아)의 서술 형식에서 비롯된 효과를 비교·대조하는 문제입니다. 제시문은 공통적으로 6·25전쟁의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는 6·25전쟁에 대한 공식 기록인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일부 내용입니다. 역사 서술의 방식은 지나간 사실들을 나열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방식의 서술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이게 해서 기록의 신뢰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사)는 김동리의 소설 ‘흥남철수’의 일부분으로,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상상력의 개입을 통해 역사의 빈틈을 메우고 있는 것이지요. (아)는 6·25전쟁 체험자들의 증언을 전달합니다. 인민군의 잔인한 숙청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국군의 경우, 질이 낮고 위험해 투항하는 사람을 총살해 버릴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의 공식기억과는 다른 민중의 기억입니다. 이 기억은 좌파적 성향을 띠고 있어, 정치적 격변기에 수면 위로 등장해 정치 투쟁의 무기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서술 형식에서 살펴보면, 공식 기록인 (바)는 사실을 전달하는 듯한 효과를 지닙니다. 너무나 당연한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지요. 반면 (사)와 (아)는 역사의 빈 공백을 채워주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과거를 생생하게 되살려 내고 있는 것이지요. (사)는 문학으로서 허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6·25전쟁 당시 어디에선가는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라는 현실성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허구의 역사화가 이뤄집니다. (아)는 증언들을 통해 과거를 현재화합니다.

정리하면, (바)는 공식기억으로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고, (사)와 (아)는 문학적 상상력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공식기억의 빈 곳을 채우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그 역할의 성격은 대조적인데, (사)가 인민군의 폭정에 신음했던 민중의 기록을 담고 있다면, (아)는 국군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즉 (사)와 (아)는 각각 우파와 좌파의 관점에서 정치투쟁을 대변하는 것이지요.

<끝>

서정광 스카이에듀 논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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