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날아간 기부금 123억

  • 입력 2008년 3월 31일 02시 57분


“날인 없는 유서는 무효” 헌재, 법원과 같은 결정

사회복지 시설 등을 운영하던 김모 씨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123억 원의 유산을 남기고 2003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유산은 은행 금고에 맡겨졌으며 며칠 뒤 자필로 쓴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에는 본인 명의의 전 재산을 연세대에 한국 사회사업 발전기금으로 기부한다는 내용과 날짜, 주소, 이름 등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 씨의 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 게 논란의 불씨가 됐다.

연세대는 자필 유언장을 근거로 “유산은 학교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씨의 형제 등 유족 7명은 “김 씨의 유산은 학교 재산이 아니다”며 2003년 12월 은행을 상대로 예금 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1, 2심 재판부는 “날인이 빠져 있다면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2006년 9월 이 같은 원심을 확정했다. 123억 원의 기부금을 날리게 된 연세대는 대법원 판결 한 달 뒤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28일 “동양문화권인 한국에선 법률행위를 할 때 도장을 사용하는 관행이 있다”며 “자필 유언은 위·변조의 위험이 큰 점에 비춰볼 때 서명과 날인을 모두 요구하는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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