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아 얼마나 무서웠니” 화이트데이의 슬픈 교실

  • 입력 2008년 3월 15일 02시 50분


“친구야, 잘가라”이혜진 양이 다니던 경기 안양시 명학초등학교의 한 학생이 14일 교실에서 숨진 이 양의 빈자리에 놓인 국화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안양=원대연 기자
“친구야, 잘가라”
이혜진 양이 다니던 경기 안양시 명학초등학교의 한 학생이 14일 교실에서 숨진 이 양의 빈자리에 놓인 국화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안양=원대연 기자
한번도 앉아보지 못한 혜진이의 새 자리엔 흰 국화 한다발만…

“혜진아, 제발 제발 좋은 곳으로 가.”

묵념이 끝나자 신슬비(11) 양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4학년 때 단짝 친구인 이혜진 양이 세상을 떠난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표정이었다.

14일 오전 경기 안양시 명학초등학교 5학년 3반. 주인 잃은 혜진 양의 책상 위에 교사와 친구들이 가져온 흰 국화꽃이 보였다.

슬비 양은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실종된 혜진 양이 반드시 돌아온다고 믿었다. 학교도 무사하기를 바라며 반을 배정했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77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슬비 양은 “어젯밤 뉴스를 보고 혜진이 얼굴이 생각나 밤새도록 울었어요. (혜진이가)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혜진 양의 5학년 담임인 송선주(46·여) 교사는 ‘예슬아 혜진아 보고 싶다!’고 적힌 노란 리본 30여 개를 손에 들고 “어떡하지, 어떡하지”라는 말만 되뇌었다.

학교에서는 임시조회가 열렸다.

“혜진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간절히 빌었는데…. 처참하게 희생됐다는 통보를 받고….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윤형(61) 교장은 슬픔에 추도사를 제대로 잇지 못했고, 보는 이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은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화이트데이. 사탕과 초콜릿, 아이들의 웃음은 찾아볼 수 없었다. 6학년 1반 칠판에는 애도의 글이 적혀 있었다.

‘오늘은 화이트데이로 기억되기보다 우리 명학 친구들에게 슬픔과 애도의 날입니다. 나보다 먼저 간 친구를 위해 마음으로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빈소가 차려진 안양 메트로병원 장례식장에서 아버지(47)는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말했다. “진아…아빠는 할 말이 없구나…미안하다, 진아. 범인을 꼭 잡아야 돼.”

그는 두 아이 앞에서 눈물을 애써 감추다 조용히 화장실 구석을 찾아 흐느꼈다.

어머니 이모(42) 씨는 딸의 영정 앞에 주저앉아 “네 얼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려고 버텼는데…. 끝내 못 보고 보내는구나”라며 눈물을 흘렸다.

경찰은 부모에게도 혜진 양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시신이 너무 심하게 부패해서 충격을 받을까 우려해서다.

시신이 발견된 경기 수원시 호매실동 야산에 이날 40대 여성이 국화꽃과 옷가지를 들고 찾아왔다.

현장과 가까운 곳에 산다는 이 여성은 “혜진이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너무 가슴이 아파 찾아왔다. 혜진이가 따뜻하고 편안하게 쉬기를 바란다”며 편지 한 통을 놓고 갔다.

‘아가야 너는 잘못이 없단다, 너를 지켜주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뿐이다. (중략) 모든 것 잊고 이 옷과 신발 입고 신고 평화만 가득한 하늘나라로 가렴.’

안양=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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