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돈때문에? 공범은 없었나?

  • 입력 2008년 3월 12일 02시 59분


서울 마포경찰서 홍성삼 서장이 11일 경찰서에서 김모 씨 일가족 4명의 피살 사건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경찰은 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이호성 씨가 돈 문제로 이들을 살해했다고 보고 있다. 김재명 기자
서울 마포경찰서 홍성삼 서장이 11일 경찰서에서 김모 씨 일가족 4명의 피살 사건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경찰은 프로야구 선수 출신인 이호성 씨가 돈 문제로 이들을 살해했다고 보고 있다. 김재명 기자
■ ‘네 모녀 피살 사건’ 수사

범행당일 “파라과이행 항공편 있나” 여행사에 문의

CCTV에 체형 다른 남성 잡혀… 李씨 아닐 가능성

9일 또다른 내연녀와 마지막으로 만나 모텔 투숙

집에서 살해된 3명 질식사… 큰딸은 머리 다쳐 숨져

서울 마포구 창전동 김모(46·여) 씨와 세 딸의 피살 사건은 전 프로야구 선수 이호성(41) 씨가 빚 때문에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홍성삼 서울 마포경찰서장은 11일 “사건 당일 오전 11시경 김 씨가 은행에서 1억7000만 원을 인출했는데 이 돈 때문에 이 씨가 김 씨 일가족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1억 원의 사용처를 확인하고 남은 7000만 원의 행방을 추적 중”이라고 말했다.

김 씨 가족의 사인에 대해 경찰은 “부검 결과 발견된 두부 함몰은 반항하다가 모서리에 부딪힌 상처로 추정된다”며 “집에서는 둔기가 발견되지 않아 집 안에서 살해된 세 명의 사인은 질식사”라고 밝혔다. 그러나 외부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이는 큰딸은 머리를 다쳐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또 “이 씨가 죽기 전 보낸 두 통의 편지 가운데 형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신의 빚 처리를 부탁하는 내용과 어머니 형 아내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적혀 있었다”며 “광주시 야구협회장에게 보낸 편지에는 ‘옛 시절이 행복했다. 하늘나라로 먼저 가 있을게’라는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었다”고 말했다.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범행 전 해외 도피 계획도=이 씨는 범행 전 해외 도피를 계획하고 김 씨에게서 1억7000만 원을 빼앗은 뒤 김 씨 일가족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보가 11일 단독 입수한 ‘이호성 발신통화 기록’ 문건에 따르면 이 씨는 범행 당일인 지난달 18일 오전 10시경 서울 광화문 H여행사에 휴대전화를 걸어 해외 항공편을 문의했다.

H여행사 관계자는 “당시 이호성 씨와 비슷한 이름의 남자가 전화를 걸어와 혼자 떠날 건데 파라과이행 항공편이 있느냐고 물었다”며 “파라과이를 거쳐 브라질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항공편을 알아본 이 씨는 오전 11시 40분경 김 씨와 함께 마포구 창전동 일대 은행 5곳을 돌며 1억7000만 원을 현금으로 인출했다.

경찰은 “계좌 추적 결과 지난달 15일 김 씨가 1억7000만 원 정기예금을 해약하고 은행 5곳에 분산 예치한 뒤 불과 사흘 만인 18일에 돈을 모두 인출했다”고 말했다.

당시 은행 폐쇄회로(CC)TV에는 김 씨가 돈을 인출하고 은행 밖에 주차된 흰색 차량의 조수석에 타는 모습이 남아 있다. 경찰은 이 씨가 김 씨를 협박해 돈을 빼앗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영상취재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이날 오후 김 씨와 세 딸을 살해한 이 씨는 다음 날 새벽 자신의 아버지 묘소가 있는 전남 화순군의 공동묘지에 김 씨 일가족의 시신을 매장했다. 이 씨는 범행 후에는 다른 사람 명의의 ‘대포폰’ 4, 5개와 공중전화만 사용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곧바로 광주로 이동한 이 씨는 지난달 19일 오후 2시경 광주 남구에서 채권자 이모(47·여) 씨를 만나 5000만 원을 전달했다.

경찰은 “채권자 이 씨에게 준 돈 5000만 원은 이호성 씨의 형에게 전달됐다”며 “이 씨는 3월 8일에도 채권자 이 씨를 다시 만나 1000만 원을 주고 자신의 내연녀 차모(40) 씨에게도 4000만 원을 줬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차 씨는 9일 이 씨와 함께 모텔에 투숙해 TV에서 실종 사건을 보도한 뉴스를 보다가 이 씨에게 “혹시 당신이 아니냐”고 물었으나 이 씨는 “아니다”며 TV를 꺼버렸다. 이 씨는 이날 밤 12시 무렵 성수대교 인근에서 차 씨와 헤어진 후 소주 2병가량을 마시고 3, 4시간 지나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은 7000만 원은 어디에”=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7000만 원의 행방을 밝히는 것이 당장 풀어야 할 숙제다.

또한 이 씨가 김 씨의 돈을 빼앗은 뒤 김 씨의 딸들까지 모두 살해한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완전 범죄를 꾀하기 위해서’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 씨는 범행 직후인 지난달 20일 김 씨의 종업원에게 김 씨의 번호로 ‘주말에 식당을 잘 부탁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낼 정도로 치밀함을 보였다. 하지만 김 씨의 큰딸이 실종 직전 친구들에게 “엄마와 재혼할 아저씨와 가족이 사나흘 여행을 갈 것”이라고 할 만큼 이 씨의 존재가 주변에 알려졌다는 점은 ‘완전 범죄’와는 거리가 먼 대목이다.

공범이 있는지도 확인돼야 할 부분이다. 경찰은 김 씨의 아파트 CCTV를 통해 실종 당일인 지난달 18일 밤 김 씨의 집에서 대형 여행가방을 실어내는 남성과 이틀 뒤인 20일 오후 김 씨의 아파트 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우고 달아난 남성을 확인했지만 이들이 이 씨인지는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는 약간 뚱뚱하고 체격이 큰 편인데 20일 주차장에서 달아난 남성은 호리호리한 체격”이라며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인지 계속 분석 중이다”고 말했다.

경찰은 실종 당일 아파트 CCTV와 20일 주차장 CCTV 정밀 분석을 통해 공범 여부를 밝히는 한편 김 씨의 추가 피해액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어떻게 네 명을 때려죽일 수가…”=실종 21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김 씨 일가족의 부검 과정을 지켜본 유가족은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김 씨의 큰오빠는 1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찾아 여동생과 조카딸들의 시신을 확인하고는 “야구방망이로, 야구방망이로 때린 것 같아…”라며 절규했다.

대학에서 뮤지컬 공연을 전공하던 큰딸 정모(20) 씨는 학부 성적이 4.5점 만점에 4.25일 정도로 모범생이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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