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그냥 넘길 일 아니다” 국정원 압박

  • 입력 2008년 1월 12일 02시 56분


이경숙 위원장 “국정원 철저히 감사해야”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열린 간사단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이경숙 위원장 “국정원 철저히 감사해야”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열린 간사단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李당선인 “어떻게 통째로 유출되나” 격노

인수위 “국정원이 못밝히면 검찰 넘길것”

‘정치 중립 - 경제 강화’로 기능 개편할 듯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1일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대선 전날 평양을 방문해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록의 언론 유출 사건을 ‘권력 교체기를 틈탄 중대한 국가기강 문란사건’으로 규정하고, 정부기관의 기강 확립 차원에서 끝까지 진상을 규명해 책임을 가리기로 했다.

인수위는 특히 이번 사건에 국정원 수뇌부가 어떤 형태로든 개입돼 있다는 판단 아래 △김 원장의 방북 목적과 구체적 행적 △문건의 유출 경위와 유출 목적 등을 철저히 가린 뒤 정보기관의 인적 쇄신과 앞으로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제도 개혁 방안까지 마련할 방침이다.

▽이 당선인, ‘평양 대화록’ 유출에 격노=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10일 김 원장의 대선 전날 평양 방문 대화록이 일부 언론에 보도된 데 대해 “어떻게 이런 국가정보 문건이 통째로 유출될 수 있느냐”며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도 11일 간사단 회의에서 “국가기밀이 보도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면서 수월하게 넘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국정원도 철저히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수위 핵심 관계자는 “정무분과 자체조사 결과 인수위에서 유출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며 “국정원의 보안감사가 진행 중이므로 조만간 진상이 드러나겠지만, 내부적으로는 ‘판단’이 사실상 끝난 사안”이라고 말했다.

인수위 내부에서는 김 원장 혹은 그 측근이 의도적으로 유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수위 관계자는 “국정원이 경선 전 일명 ‘이명박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당선인의 개인정보를 조회했고, 김경준 씨 기획입국에도 관련됐다는 의혹을 받았다”며 “그런 국정원이 정권교체 이후 생존을 노리고 비열한 공작을 벌인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국정원 기강 잡기=인수위 측은 특히 문건 유출이 국정원 수뇌부의 개입이 없이는 불가능한 사안이라는 점을 심각히 여기고 앞으로 국정원에 대한 인적 제도적 수술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이 전날 국정원 측에 철저한 보안감사를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11일 “국정원 측에서 이런 문건이 유출된다면 이는 도덕적 해이를 넘어 국가기관의 중요한 범법 행위”라며 김 원장의 퇴임 여부와 관계없이 법적 책임을 추궁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인수위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이 국정원의 향후 조직·기능 개편과 국정원장 인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인수위 관계자는 “지난 대선 기간 이 당선인이 국정원의 정치 개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국정원의 정치 중립을 강화하고 경제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 가능성=김 원장은 10일 정례 안보정책조정회의 참석차 청와대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돼 사건 진상에 관해 노무현 대통령 측에 보고했는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변인은 이날 유출된 보고서에 대해 “이 정도 문건이면 비문(秘文)이 정상인데 보통 일반 서류에서 사용하는 평문으로 정리돼 보고된 점, 국정원 문서 표지에 대외비 표시나 문서 유출 시 적발하기 위해 적어놓는 번호가 없었던 점이 의아하다”고 말했다.

인수위 내에서는 이 문건이 공식적인 국정원 내부 문건이 아닐 가능성, 문건 유출이 발각되더라도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대외비 분류 표시를 하지 않았을 가능성 등을 제기하고 있다. 한 인수위 관계자는 “국정원에 자체 조사를 맡긴 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라며 “국정원이 유출 경위를 밝혀내지 못하면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법 17조는 ‘모든 직원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한 후에도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위반 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 영상 취재 : 이종승 기자


▲ 영상 취재 : 이종승 기자


▲ 영상 취재 : 이종승 기자

▼차기 국정원장 ‘비정치인’ 가닥▼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은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을 근절한다는 취지에서 차기 국정원장 후보를 정치적 중립성이 강한 인사 가운데 찾고 있다.

이 당선인 측은 현재 송정호 전 법무장관을 유력한 국정원장 후보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남주홍 경기대 교수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 이 당선인 주변에서는 이 당선인의 ‘멘터(Mentor·조언자)’인 최시중 전 상임고문도 거론되고 있다. 이종찬 전 서울고검장도 후보군에 올라 있다.

전북 익산 출신인 송 전 장관은 이 당선인과는 고려대 동기로 막역한 사이다. 한나라당 경선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송 전 장관은 이 당선인의 변호사 외곽 조직인 ‘송법회’ 일원으로 이 당선인을 측면 지원했고, 경선 당시에는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대선에서 ‘BBK 공방’이 치열했을 때는 법률 자문을 맡기도 했다. 송 전 장관은 광주고검장, 법무부 보호국장 등 검찰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과 김대중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현재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만 이 당선인과 고려대 동기라는 점이 ‘약점 아닌 약점’으로 꼽힌다.

남 교수는 현재 인수위 정무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 교수는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대통령후보 안보통일보좌역으로 출발해 국정원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안보통일보좌관을 지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차장도 지냈다. 지난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 대선에서는 이 당선인의 외교안보 정책 개발에 참여해 이 당선인의 의중을 잘 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당선인 측은 13일까지 후보군을 최종 압축해 이들에 대한 최종 검증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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