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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1월 1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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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를 ‘판박이’한 하루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시험을 망쳤을지라도 전혀 문제될 게 없지 않겠어요?
내일 또 똑같은 시험문제가 다시 나올 터이니…. 이렇게만 된다면 하루하루를 정말 완벽하게 대비하며 살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이 영화 속 주인공은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는커녕 지독한 저주로 여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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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일상 지겹나요? 생각바꾸면 행복의 문이 보여요
[1] 스토리라인
TV 기상예보관인 ‘필 코너스’(빌 머리)는 이기적인 데다가 세상사에 냉소적인 남자입니다. 필은 매년 2월 2일 한 시골마을에서 열리는 ‘성촉절’(일종의 ‘경칩’)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올해도 같은 길을 떠납니다.
4년째 똑같은 취재를 하는 필은 매사에 심드렁합니다. 건성으로 일을 마친 그는 얼른 마을을 떠나려 하지만, 폭설로 길이 막히는 바람에 꼼짝없이 발이 묶이지요.
아,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입니까.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필은 어제와 너무나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현실에 화들짝 놀랍니다. 라디오에선 똑같은 방송이 나오고,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거죠. 오늘도 어제와 같은 ‘2월 2일’이 마술처럼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2월 2일’은 반복됩니다. 필은 잔꾀를 내기 시작합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악용해 현금수송차량을 털거나 마을사람들을 골탕 먹입니다.
자, 필은 이제 행복해질까요? 아닙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하루에 어느새 숨이 막혀 버릴 것만 같습니다. 필은 결국 마음을 바꿉니다. 피아노를 배우고 멋진 얼음조각을 깎는 기술을 배우고 위기에 빠진 마을사람들을 돕습니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뜬 필. 왠지 전혀 다른 하루가 시작된 듯한 직감을 받습니다. 아,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2월 3일이 온 것입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영화 속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어찌 똑같은 날이 매일매일 반복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더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같은 날이 반복되는 영화의 설정을 과연 어떤 의미로 해석해 낼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세요. 매일 똑같은 ‘2월 2일’이 반복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현대인의 하루는 필에게 반복되는 2월 2일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시간에 학교를 가고, 똑같은 시간에 점심을 먹고, 똑같은 시간에 학원에 가고, 똑같은 시간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똑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드니 말입니다. 너무나 비슷한 날이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그 의미조차도 희미해져 버린 우리의 오늘.
그렇습니다! 주인공 필에게 반복되는 삶은, 매일매일 ‘복제’된 하루를 거듭해 살면서 어느새 삶의 의미를 잃고 권태에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필의 직업이 기상예보관이란 점은 정말 절묘한 설정임을 알겠습니다. “비올 확률은 85%”라며 내일의 날씨를 기가 막히게 예측하면서도 늘 욕구불만의 표정이 가득했던 필. 그는 내일을 뻔히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반복적인 삶을 사는 현대인의 자화상이었습니다.)
영화는 이 대목에서 핵심적인 메시지를 던지는데요. 영화 초반, 되풀이되는 하루에 지친 필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우연히 동석한 남자가 필에게 던지는 대사를 살펴볼까요?
“이렇게 물이 반쯤 담긴 컵을 보고 ‘반밖에 안 남았네’ 하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고, ‘반이나 남았네’하고 기뻐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반밖에 안 남았네’라고 하는 쪽이네요.”
여기서 ‘물이 반쯤 담긴 컵’이란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에 대한 비유입니다. 결국 ‘늘 똑같은 하루’일지라도 이런 하루를 대하는 필의 태도에 따라 비관적인 삶(‘반밖에 안 남았네’)이 될 수도, 반대로 행복한 삶(‘반이나 남았네’)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말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중요한 건 반복되는 삶 자체가 아닙니다. ‘그런 삶을 우리가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이용하느냐’가 관건이지요. 필이 그랬던 것처럼 반복적인 일상이라도 그 속에서 남과 더불어 사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 우리의 내일은 오늘과는 분명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됩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오늘은 내일이라고요(Today is tomorrow)!”
그렇습니다. 반복적인 일상, 그 속에서 우리가 새로운 가치를 찾고 발견해낼 때 오늘은 곧 내일, 즉 새로운 미래가 될 수 있습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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