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씨 유서대필 사건 재심 권고”

  • 입력 2007년 11월 14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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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 “국과수 재감정… 대필 아닌 김기설 씨 자필 결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13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강기훈 씨 유서대필 사건’과 관련해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의 유서가 김 씨의 자필이 맞다는 결론을 내리고 정부에 재심을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검찰로부터 김 씨의 유서 원본과 당시 수사기록을 건네받아 국내 7개 필적 감정기관의 검증을 거친 결과 모든 기관이 강 씨가 유서 작성자가 아니며 김 씨가 직접 유서를 작성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과거사위의 결정에 따라 강 씨는 1991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지 16년 만에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얻게 됐다.

지난해 4월 과거사위는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 신청을 접수하고 ‘확정 판결에 의해 기존 증거가 위·변조된 것이 증명되거나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근거가 새로 발견되면 예외로 한다’는 형사소송법을 근거로 재조사에 착수했다.

1991년 검찰 수사 당시 김 씨의 유서가 강 씨의 필체라고 판정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재감정 결과 ‘필적이 김 씨의 것이 맞다’는 결론을 과거사위에 전달했다.

하지만 과거사위의 재심 권고 결정에도 불구하고 바로 재심 절차가 시작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위가 재심을 청구하더라도 법원이 과거사위의 결정문을 검토한 뒤 재심 청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과거사위의 결정에 강 씨는 “이번 국과수의 재감정 결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누명을 벗는 데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씨는 또 “공안 정국에서 내려진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아 결백을 입증받았다고 생각한다”며 “잘못된 판결을 뒤집어야지 필적 감정 결과가 뒤집혔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책위원회와 함께 재심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해 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검찰 관계자들은 이 결정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으로 수사를 지휘했던 강신욱 전 대법관은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특정 단체가 입맛에 맞는 결론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수사 검사였던 남기춘 서울북부지검 차장도 “감정 결과뿐 아니라 다른 정황 증거들까지 종합해서 판단을 내렸고, 1심에서 3심까지 결론이 난 사항”이라며 “이제 와서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과거사위는 14일 발표 예정인 결정문에 당시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언급할지 검토 중이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유서 대필 사건

1991년 5월 8일 전국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씨가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당시 검찰은 김 씨의 전민련 동료였던 강기훈 씨가 유서를 대신 써 주며 김 씨의 자살을 방조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강 씨의 필적이 맞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을 결정적 근거로 내세우며 강 씨를 기소했다. 강 씨는 징역 3년 2개월을 선고받고 1994년 출소했으나 조작 의혹은 계속해서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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