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人間失格)’

  • 입력 2007년 10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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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답답하고 눅눅한 기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뜨거웠던 태양도 불기운을 잃었고, 길었던 하루는 조금씩 짧아지고 있습니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초록빛 잎은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하염없이 거리를 떠돕니다. 빨갛게 무르익은 사과가 툭 떨어지고 싸늘한 바람이 부는 10월입니다. 하늘이 높아만 가는 이때, 여러분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요?

여기, 전혀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표정도 없고, 별다른 특징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여성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걸 보면 그는 분명히 미남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금 전까지 그를 바라봤던 사람도, 돌아서면 그의 얼굴을 도무지 기억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을 무서워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인간이 두려웠습니다. 그는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불행한 일인지 행복한 일인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어쩔 수 없이 더불어 살기 위해 인간을 이해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끝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인간의 삶이란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다른 인간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죽도록 무서웠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서 익살맞게 행동했습니다. 익살맞은 행동을 할 때, 상대방이 웃음을 보이고 자신에게 더 친근한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그가 보이는 익살은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노력이 가득 배어 있는 서러운 것이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다른 사람과 ‘즐거운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마음과는 전혀 다른 ‘서러운 웃음’을 짓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게 노력하면서도 끝내는 ‘외롭다’는 말을 되뇌고 있지는 않나요?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그는 재치 있고 명랑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속마음을 다른 인간에게 내보일 수 없었습니다. “아니, 지금까지 명랑하기만 했던 사람이 오늘은 왜 이렇게 어두울까?”라는 다른 사람의 말 한 마디가 죽음보다 무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거짓 익살과 웃음은 시간이 갈수록 완벽해져 갔습니다. 그는 그 어느 훌륭한 영화배우보다 능숙하게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완벽해져 가는 ‘연기 실력’과 달리, 그는 더욱 더 깊은 외로움과 고독,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했지만 ‘우정’이라는 것을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슬퍼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 아닐까요?”

이런 생각은 그를 더욱 더 슬프고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그는 다른 인간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처절한 연기’를 펼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인간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과 따뜻함을 술과 담배에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술과 담배에 지나지 않을 뿐, 인간을 대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으므로,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한 인간. 인간의 본질을 알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한 인간.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능력도 지니지 못했던 한 인간. 이제는 익살이 아니라, 화를 낼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던 한 인간. 다른 인간과 더불어 평범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던 한 인간. 목숨을 끊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기도 했던 한 인간. 행복마저도 두려워했던 한 인간.

누구보다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끝내 인간이 되는 시험에서 실격(失格)해 버린 한 인간의 얼굴을 그릴 수 있겠습니까?

황성규 학림 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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