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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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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같은 아파트 생기려나
남태평양에는 ‘페이(fei)’라는 화폐를 쓰는 섬나라가 있다. 페이란 커다란 돌 바퀴다. 하지만 이네들은 물건을 사고팔 때 이 돌 바퀴를 직접 주고받지는 않는다. 심지어 페이가 물에 잠겨 있어도 상관없다. 누구 것인지만 알면 이를 믿고 물건을 주고받았으니까.
화폐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주민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던 섬 정부는 페이마다 ‘정부소유’라는 표시를 하기에 이른다. 당황한 원주민들은 제발 표시를 지워달라고 하소연했지만, 섬 정부는 결국 원주민들의 협력을 이끌어냈다.
웃기는 이야기 같지만, 우리 문화에도 페이가 있다. 국문학자 고미숙은 페이를 우리네 아파트에 빗댄다. 10억짜리 아파트에 산다 해도 그 돈을 손에 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집을 믿고 돈을 빌리고 또 돈을 빌려준다. 중산층을 가늠하는 기준도 ‘몇 평대 아파트’에 사는 지로 갈리곤 한다.
사실, 선진국에서 아파트는 싸구려 공통주택일 뿐이다. 왜 우리만 유난히 아파트를 좋아할까?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에 따르면, 한국의 아파트는 처음부터 ‘사는 집’보다는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더 컸다. 워낙 주택이 부족한 상황,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아파트 짓는 가격을 옥죄었다. 분양권을 얻으면 아파트를 실제 가격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분양권 당첨은 중산층에게는 복권과도 같았다. 일단 사기만 하면 목돈을 손에 쥐었던 까닭이다.
더구나 아파트는 공산품처럼 모양새와 품질이 표준화되어 있다. 옆구리에는 건설회사 이름이 상표로 붙어 있기까지 하다. 그러니 집이 얼마나 살기 좋은지, 값이 얼마나 더 오를지를 먼저 따지지 않겠는가.
길거리에는 ‘축! 재개발 지구 지정’ 같은 문구가 쉽게 눈에 띈다. 과연 이것이 축하할 만한 일일까? 재개발이란 자기 동네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일이다. 누구도 그 속에 얽힌 사연과 기억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집이라는 ‘페이’가 늘어난다는 데 흥분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52.7%가 아파트에 사는 ‘아파트 공화국’이다.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에게는 추억할 공간이 없다. 성인이 되었을 20여 년 뒤면, 살던 곳이 송두리째 없어지고 더 빽빽한 아파트 숲이 들어설 터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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