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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7월 31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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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에게 일기는 글쓰기의 첫걸음이다. 일기 지도를 통해 아이의 글쓰기 습관을 잡아 주려는 부모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부모가 일기 지도에 실패한다. 문제는 부모 자신에게 있다. 부모 스스로 ‘일기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아이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방학 중 일기 쓰기 지도, 어떻게 하면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어떻게 시작할까▼
부모와 그날 있었던 일 대화 나누는 것이 출발점
아이가 “학원에서 만화책을 보다 혼났다”며 집에 돌아와 징징 운다. 이때 엄마의 반응은 다음 두 가지로 나뉜다. “너 이리와, 더 혼나야 돼”라고 윽박지르든가, 아니면 “몰래 보다가 들키니까 기분이 어땠어?”라고 친구처럼 되묻는 것이다. 엄마가 후자일 경우, 아이도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만화책을 봤는지, 왜 수업시간에 보았는지, 선생님에게 얼마나 혼났는지(손바닥 몇 대를 맞았는지), 선생님은 무슨 말을 했고, 그때 나 자신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아이의 마음을 읽고 맞장구를 쳐 준 다음 넌지시 이렇게 이야기해 보자. “지금 네가 말한 걸 일기로 써 볼래?”
“아이들이 겪은 일을 찬찬히 들은 뒤 그 내용을 대화체로 그대로 옮겨 쓰게 하면 일기가 돼요. ‘말 따로, 글 따로’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지요.”
초등학교 1학년 일기 지도법을 다룬 책 ‘일기 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보리)를 낸 대구 금포초등학교 윤태규 교감. 그는 부모님과 아이가 그날 있었던 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기 쓰기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일기는 시간을 정해 두기보다 아이의 감정이 풍부해진 순간 바로 쓰는 것이 좋다. 경험을 그림 그리듯 자세하고 솔직하게만 쓴다면 분량은 중요하지 않다.
만약 아이가 엄마와의 대화 내용을 곧장 글로 옮기는 데 익숙지 않다면, ‘생각 그물’(일명 ‘마인드맵’)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생각 그물은 그날 있었던 가장 중요한 사건을 동그라미 안에 쓴 뒤, 그 사건과 관련된 단어를 동그라미 둘레에 자유롭게 써서 선으로 연결하는 것. △그날 있었던 중요한 사건을 간추리고 △이를 짧은 주제 문장으로 옮긴 뒤 △주제 문장을 다시 여러 개의 문장으로 확대 발전시키는 연습을 하는 데 효과적이다.
다음은 박승렬 LC교육연구소장이 제안한 ‘생각 그물을 활용한 일기 쓰기’ 사례. 서울 원명초등학교 2학년 하원준 군의 사례다.
[2] 주제 문장
나는 새벽에 유나랙(‘윤활액’의 오기)으로 렌즈를 뺐다.
[3] 일기
2006년 8월 9일 수요일 날씨: 더움
제목: 렌즈를 뺀 날
세벽(새벽)에 렌즈를 뺐습니다. 렌즈를 빼기 전에는 유나랙(윤활액)을 꼭 너(넣어)야 됩니다. 외(왜)냐하면 각막에 상처가 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가 되면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습니다. 나는 렌즈를 잘 끼고 잘 빼서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더 재미있게 하려면▼
동시 일기-편지 일기-관찰 일기 써 보게 하면 흥미 더 느껴
또래 친구들이 쓴 일기를 아이에게 보여 주는 것도 좋은 자극이 된다. 이때는 맞춤법이 서툴고 못쓴 일기를 보여 주는 편이, 깔끔하게 잘 쓴 일기를 보여 주는 것보다 낫다. 고칠 점을 찾으면서 “너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 쓴 일기를 볼 수 있는 책으로는 △‘일기 쓰기, 어떻게 시작할까’(보리) △‘깔깔마녀는 일기 마법사’(부표) △‘난 개밥 반장 아니다’(푸른숲) △‘나도 일등 한 적이 있다’(비룡소) △‘내가 처음 쓴 일기’(보리) 등이 있다.
초등학생 아들이 쓴 일기를 엮은 책 ‘깔깔마녀는 일기 마법사’를 내고 자녀교육 사이트 ‘아삭’(www.asak.co.kr)을 운영 중인 주부 황미용 씨는 “아이가 일기 쓸 거리가 없거나, 많이 피곤해하는 날에는 생활일기 말고 새로운 형식의 일기를 써 보라고 권유해도 좋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동시 형식으로 쓰는 ‘동시 일기’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쓰는 ‘편지 일기’ △관찰 일기, 기행 일기, 요리 일기와 같은 ‘기록 일기’ △독서 일기, 신문활용교육(NIE) 일기, 영화감상 일기와 같은 ‘감상 일기’는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는 또 다른 형식이다.
중요한 건 아이가 일기 쓰기를 ‘의무’나 ‘숙제’가 아닌, ‘재미있는 일’로 여기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글씨를 못 쓴다고 혼을 내거나, 맞춤법이 틀린 글자를 새빨간 펜으로 고치거나, 부부싸움처럼 집안의 창피한 일을 일기에 못 쓰게 하는 행위는 부모가 피해야 할 ‘3대 오류’.
아이의 일기장 한 귀퉁이에 부모의 마음을 담은 짧은 편지(일명 ‘쪽지 편지’)를 남기는 것도 효과적이다(그래픽 참조). 자주 틀리는 맞춤법을 지적하고 고쳐 주고자 한다면 별도의 노트를 준비해 틀린 글자를 다섯 번씩 제대로 써 보게 한다.
▶www.easynonsul.com에서 ‘요리 일기’, ‘칭찬상장 일기’, ‘마음이 아플 때 쓰는 일기’의 양식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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