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배규식]‘명분의 덫’에 걸린 노동운동

  • 입력 2007년 7월 5일 02시 59분


코멘트
요즘 언론에 의해 노조가 동네북 신세가 되고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도 ‘노동운동의 완전 실패’라며 노조를 비판하는 판에 덩달아 비판을 하는 것이 마음에 내키는 일은 아니다. 노동운동이 사회의 왼쪽 날개로서 우리 사회의 균형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최근 노조의 행태를 보면서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 괴리된 투쟁 땐 고립 가속

노조와 노동운동의 위기는 내부에 빨간불이 켜졌음에도 그런 위기를 자각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노조는 1987년 이후 어느 때보다도 사회적으로 고립됐다. 노조 간부는 가까운 가족, 친척이나 친구에게서도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할 때가 적지 않다. 보수 언론을 탓하지만 노조의 자업자득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며칠 전 있었던 금속노조의 파업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노조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정책 이슈나 정치 문제를 갖고 투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금속노조의 FTA 반대 투쟁은 투쟁방식과 투쟁에 이르는 절차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금속노조 대의원들은 내부의 분파적 이해관계 때문에 조합원 뜻을 묻지 않고 매우 독단적으로 FTA 반대 파업 결정을 했다. FTA 반대 집회 정도로 끝낼 수 있었던 것을 반대 파업을 결정함으로써 사실상 사용자들의 산별교섭 참여를 어렵게 하여 산별교섭의 성사를 방해했다.

금속노조 중앙위원회는 조합원 찬반투표마저 거부했다. 결국 노조 조합원의 반발, 사용자의 거부감,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했다. 잘못된 파업 결정을 한 금속노조의 상당수 대의원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 결정했는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금속노조 간부들이 하이닉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장기투쟁 마무리 협상에 참여하여 투쟁을 종료했다. 투쟁에 참여했던 소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도 2년간의 싸움 끝에 타협의 불가피성에 동의했다.

그러나 노동계 일각에서는 타협을 한 금속노조 간부와 하이닉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의 대의를 배신했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투쟁의 명분에만 집착하는 노동계 일부의 현실인식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도 노동 3권 보장과 법외노조를 고집하며 전투주의 행태를 답습하다가 쓴맛을 보고 있다. 전공노는 노조의 합법화 여부를 찬반투표로 결정하자는 의견을 대의원대회에서 물리력으로 막았다. 이에 다수가 전공노를 이탈해 전국민주공무원노조를 결성한 뒤 합법화의 길을 걷고 있다. 투쟁적 법외노조를 고집한 전공노는 고립화와 세력 약화를 면치 못하게 됐다.

위기의 원인 냉철히 따져볼 때

최근 대전 시내버스 노조 파업도 외부 환경을 무시하고 물리력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이 시민의 비판을 불러일으키면서 노조가 고립됐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최근 일부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를 자기 문제로 끌어안는 노력을 보이는 것은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와 구분되는 긍정적 발전이다.

노동운동이 외부 환경 변화를 무시하고, 정부와 사용자만을 비난하며 조합원 의사와 국민 시선을 외면하면서 과거 전투주의적 행태를 답습해 분파적 의사결정과 행동을 계속하는 한 노동운동의 고립화는 가속될 것이다. 또 노동운동이 추구한 산별교섭의 진전도 불가능하게 할 뿐이다.

이제 노동운동도 스스로가 어디에 빨간불이 켜져 있는지, 무엇 때문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는지 돌아볼 때이다. 빨간불이 켜져 있는지도 모르는 노동운동은 조합원과 국민의 외면 속에 약화와 고립의 위기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