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 “명분없는 파업 못한다” 현장서 반기

  • 입력 2007년 6월 25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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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잡한 노조 지도부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이상욱 지부장(왼쪽)이 24일 파업 일정을 5일에서 2일로 축소하기로 결정한 확대운영위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착잡한 노조 지도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이상욱 지부장(왼쪽)이 24일 파업 일정을 5일에서 2일로 축소하기로 결정한 확대운영위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현장의 파업 반대 여론이 이렇게 높은지는 미처 몰랐다.”(19일 금속노조와 현대차 울산공장 간담회에서 금속노조 간부 A 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내세운 파업은 목적부터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민주노총 간부 K 씨) 24일 금속노조 현대차지부가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가 계획한 파업 가운데 일부를 철회한 것은 현장 노동자의 파업 반대 여론이 거셌기 때문이다. 파업을 앞두고 현대차에서는 노동자 실명으로 ‘정치 파업 반대’ 대자보가 나붙고 금속노조 집행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여기에다 금속노조 내부의 복잡한 역학관계도 파업 축소 요인으로 작용했다.강경파인 금속노조 각 지역지부가 파업을 밀어붙이고, 여기에 온건 지도부가 끌려 다니다 결국 현장 노동자의 힘에 밀려 파업이 약화됐다는 분석이다.》

‘중앙서 결정하면 무조건 실행’ 관행에 제동

노동계 강경파 입지 약화 ‘새판짜기’ 조짐

○현장 노동자 여론에 막힌 파업

파업 축소 결정이 알려지자 대부분 조합원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현대차 울산공장 조합원 김모(43) 씨는 “이번 파업은 정당하지 않아 불참할 생각이었다”며 “조합원이 반대하는 정치파업은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24일 금속노조와 현대차지부의 인터넷 자유게시판에는 25∼27일뿐 아니라 이번 파업 전체를 철회해야 한다는 글이 잇따랐다.

현대차의 한 조합원은 노조 게시판에 “정치파업을 계속할 경우 금속노조 탈퇴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현장 근로자와 지역 사회는 파업 강행이 결정된 5월 말부터 지도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현대차에서는 실명으로 파업 반대 대자보가 나붙었고, 18∼19일 금속노조 지도부와 현대차지부 간담회에서는 공개적으로 파업 결정을 성토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그동안 현대차가 중앙지도부의 파업에 선봉대 역할을 맡았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울산지역 140여 개 시민·경제단체로 구성된 행복도시울산만들기범시민협의회는 5월 말부터 금속노조 본부와 현대차지부 사무실 등을 방문하거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파업 철회”를 촉구해왔다.

○파업 구도가 바뀐다

금속노조는 ‘민주노총-금속노조-금속노조 지역지부-기업지부’ 등 수직 구도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들의 파업은 중앙지도부가 결정하고 산하 조직이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파업 결정 과정에서는 금속노조 지도부가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데 비해 울산 등 각 지역지부가 적극 나서 추진됐다.

파업이 약화되는 과정에서도 현대차 등 현장 지부가 지역지부나 중앙지도부의 파업 방침에 반발하는 형태를 보였다.

금속노조가 파업을 주도하고 상부 조직인 민주노총이 가세하는 듯한 모습도 과거 파업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동안의 투쟁 과정이 ‘위로부터’라면 이번에는 ‘중간에서부터’ 파업을 밀어붙였고 다시 그 아래인 ‘현장에서’ 파업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차 지부 간부인 P 씨는 “중앙 지침에 의한 일방통행에 제동이 걸렸다는 측면에서 이번 파업 축소의 의미가 크다”고 진단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관계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노총은 22일 “금속노조의 파업은 민주노총의 파업이 아니다”라는 내용을 언론에 알려왔다. 민주노총은 총파업 대신 ‘6월 총력투쟁’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이번 파업 사태를 계기로 현장 여론 중심으로 노동계의 ‘새판짜기’가 시작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총파업 영향 크지 않을 듯

현대차지부가 28, 29일 파업에 돌입해도 참여율이 저조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조합원 B 씨는 “대의원 등이 감시만 하지 않는다면 28, 29일 파업에 불참하는 조합원이 전체의 80%는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GM대우 쌍용 기아 등 다른 자동차 업체 노조의 파업도 간부 중심으로만 이뤄질 예정이다.

이 때문에 28, 29일 파업을 벌이더라도 총파업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미미한 파업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파업 과정을 온건파와 강경파 간 주도권 다툼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노동부 안경덕 노사관계조정팀장은 “노동계 내부의 강경 투쟁 여론이 수그러들 수는 있으나 합리적 투쟁 관행이 정착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노조집행부 ‘파업 강행 재확인’ 회의 소집

참석자들 “현장분위기 심각… 재논의” 반발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가 금속노조의 파업 일정을 부분 철회한 24일 오후 현대차 지부가 있는 울산공장 주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현대차 지부가 간부회의를 소집한 것은 이날 낮 12시. 지부 임원(6명)을 비롯해 각 사업부 대표(6명)와 각 위원회 의장(9명) 등 총 21명이 참석했다.

이날 회의의 안건은 ‘간부들만 파업에 참여하겠다’는 정비위원회의 22일 결정에 대한 경위 조사와 함께 25일부터 예정된 파업 강행 방침을 재확인하기 위해 소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집행부도 이 안건이 ‘간단히’ 통과될 것으로 믿고 오후 2시 기자간담회를 열겠다고 오후 1시 5분경 기자들에게 통보했다.

그러나 회의 참석자 가운데 일부가 “현장 조합원들의 반(反)파업 분위기가 높다”며 “파업 일정을 재논의하자”고 제의하면서 집행부는 ‘암초’에 부닥쳤다. 기자간담회도 연기됐으며, 지부 관계자는 “최종 결정이 오후 6시 이후로 미뤄질 수도 있다”고 말해 난상토론이 벌어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지부의 결정은 예상보다 빨랐다. 지부는 오후 3시 35분에 “28, 29일만 집중 파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상욱 지부장은 회의 직후 “25∼27일 지역별로 부분 파업을 하면 힘을 집중할 수 없어 28, 29일 집중 파업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금속노조의 결정을 지부에서 번복할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해 온 그가 ‘집중 파업 투쟁’이라며 금속노조의 지침을 어기지 않았다고 밝힌 것이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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