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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5월 1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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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는 환갑을 맞은 서울 인창고교 동창 100여 명(13회)이 40년 만에 한자리에 모여 90세를 바라보는 스승 여덟 분을 모시고 스승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마련됐다.
핑크빛 조끼에 체크무늬 넥타이를 맨 윤원섭(87) 옹은 “이런 날은 물만 먹어도 좋지. 나이 90이 다 됐는데 애들이 찾아 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 말하며 벅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40년 전 카리스마가 넘쳐 학생들에게 중국 금나라 태조인 ‘아골타’란 별명으로 불렸던 윤 옹은 이제 60대 제자들의 부축을 받아야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고령의 스승들에게 같이 늙어가는 제자들의 얼굴은 희미하기만 했다. 하지만 제자들 왼쪽 가슴에 달린 명찰을 확인하며 40년 전으로 돌아가 힘차게 악수했다.
20대 중반부터 수학을 가르친 장양수(69) 씨는 “여러분은 한국 사회의 발전을 이뤄낸 주역이 된 세대”라며 “사회 각 곳에서 열심히 살아온 여러분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생활지도부장이었던 이상영(82) 옹은 흡연이 정학 사유였던 당시,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들킨 학생이 놀라 창문으로 뛰어내렸다가 전깃줄에 걸려 운 좋게 목숨을 건진 기억을 떠올렸다.
최완식(76) 옹은 안전상 이유로 수학여행이 금지됐던 당시 젊은 교사로서 수학여행을 당차게 추진했던 경험을 회고했다.
40년 전 학교 농구부 선수였던 차성환(60) 씨는 인창고에 농구부를 세워 11년간 선수들을 길러낸 현운영(79) 옹의 사랑을 잊지 못했다.
차 씨는 “졸업 후 고려대 농구팀에 입단했을 때 내가 건강이 안 좋단 말을 들은 은사님이 직접 한약을 지어 전해 주셨다”고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총동문회장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인창고 8회 졸업생 서영수 회장은 목이 멘 목소리로 “후배들의 스승을 모시는 마음에 고개를 절로 숙이게 된다”며 돌아가신 선생님들 대신 이날 모신 여덟 스승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와 함께 100여 명의 제자도 같이 큰절을 올리며 10년 뒤 사은회를 기약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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