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싹트는 교실]충북 진천 구정초등학교

  • 입력 2007년 4월 25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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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군 구정초등학교 학생들이 티칭프로에게서 어드레스 자세를 교정 받고 있다. 이 학교 4, 5, 6학년생 전원은 일주일에 4시간씩 골프 교육을 받고 있다. 진천=장기우 기자
충북 진천군 구정초등학교 학생들이 티칭프로에게서 어드레스 자세를 교정 받고 있다. 이 학교 4, 5, 6학년생 전원은 일주일에 4시간씩 골프 교육을 받고 있다. 진천=장기우 기자
■전교생 60명뿐인 시골학교에 골프교실 만들었더니…

《오전 7시 20분. 골프연습장에 도착한 6학년 윤태현(12) 군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7번 아이언을 잡았다. 작년 겨울만 해도 100야드를 넘기기도 힘겨웠다. 이제는 120야드도 거뜬하다. 윤 군이 일찌감치 골프선수로 진로를 잡은 것은 재학 중인 충북 진천군 초평면 구정초등학교(교장 신관철)의 ‘구정어린이 골프 교실’ 덕분이다. 전체 재학생이 60명밖에 안되는 전형적인 미니 시골학교인 이곳은 지난해부터 고학년(2006년에는 5, 6학년 올해는 4, 5, 6학년)을 대상으로 골프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은 현재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모두 무료로 골프교육을 받고 있다.

이미 다양한 방과 후 활동을 하고 있는 이 학교가 골프를 방과 후 활동으로 추가한 것은 최종덕(56) 교감이 시골 초등학교의 위기를 넘어설 ‘비책(秘策)’으로 골프교육을 제안했기 때문. “시골 초등학교에서 무슨 골프냐”, “바람만 넣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특별함이 오히려 통할 수 있다고 결론이 모아졌다.

동문회에서 골프 장비를 지원했다. 인근 증평군의 한 골프연습장도 학생들이 연습장을 무료로 사용하도록 도와줬다. PGA 티칭프로 유준선(52) 씨와 3명의 세미프로가 코치 자원 봉사를 자청해 학생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TV 중계에서나 보던 골프를 접한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변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4시간씩 진행되는 골프교육시간은 골프 열기로 가득 찼다.

학교는 이들 가운데 골프에 남다른 소질을 보인 5명을 뽑아 집중 교육하고 있다. 올가을부터는 각종 대회에도 출전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낼 계획이다.

골프교실 담당 정해란(32) 교사는 “도시에 있는 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교육환경이지만 ‘골프교실’이라는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 학생과 학부모 모두 만족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학생들이 도시 학교에도 없는 그 무엇이 우리에게는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골프교실이 입소문을 타면서 도시지역 학생들이 전학을 오는 성과도 거두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4명이 전학을 왔다.

이웃에 있는 중학교에서는 구정초등학교를 벤치마킹해 골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고 이기용 충북도교육감은 농촌 초등교의 성공적인 모델이라며 최근 3000만 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사업 때문에 서울 생활을 접고 지난해 충북으로 이사 온 배갑병(44) 씨는 딸 현지(12) 양을 올해 이 학교 6학년으로 입학시켰다. 사는 곳은 인근 증평군이지만 이 학교의 골프교육 소식을 듣고 몇 차례나 이 학교를 탐방한 끝에 선택했다.

지난해 청주시의 한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던 남매를 이곳으로 전학시킨 윤자영(36·여) 씨는 “도시에서 학원공부에 찌든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초등학교 시절을 만들어 주기 위해 과감히 구정초교로 전학을 시켰다”고 말했다.

골프뿐만이 아니다. 전교생이 원어민 영어회화, 무료 태권도, 국악, 영화 감상 등 다양한 방과 후 교육을 받고 있다. 7명의 교사(교장 교감 제외)는 분야별로 아이들과 어울리며 희망을 키워 주고 있다.

지난해 가을축제 때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지원으로 영화 제작과 감상, 카메라 사용법을 배운 뒤 4달여간의 노력 끝에 학생들 스스로 단편영화 2편을 만들어 상영했다. 올해에도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와 촬영까지 1인 3역을 맡아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신 교장은 “농촌지역 초등학교들이 학생 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경쟁력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갖춘다면 도시 학교가 부러워하는 ‘꿈과 희망이 가득 찬 농촌 초등학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천=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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