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공지희의 어린이 콩트]<2>나는 외계인이다

  • 입력 2007년 4월 1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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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희 씨 책 ‘알로알로 내 짝궁 민들레’ 중 김중석 그림. 사진 제공 비룡소
공지희 씨 책 ‘알로알로 내 짝궁 민들레’ 중 김중석 그림. 사진 제공 비룡소
나는 내 별 하나를 가지고 있다.

나는 내 별에서 푸른 별 지구로 14년 전에 보내졌다. 엄마의 배를 통해서 지구에 태어났지만, 독재자 아빠도, 잔소리쟁이 엄마도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 나에게 만약 부모를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면 나는 지금의 아빠와 엄마를 선택했을까?

엄마와 아빠는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무척 많다.

“네 머릿속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 거냐?”고 묻기도 하고, “옷차림이 왜 그 모양이야? 그 행동거지하고 말투는 그게 뭐야?” 하고 공격적인 질문을 한다.

지구인이 어떻게 외계인을 이해하리. 나는 바라지도 않는다.

지구인들에게 만날 구박만 받는 외로운 외계인(어린이)들은 서로 위로하며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외계인들끼리는 서로 한눈에 알아본다. 이 살벌한 지구별에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 존재들을 어찌 몰라보겠는가.

외계인들은 날마다 큰 학교와 작은 학교(학원)에서 만난다.

학교는 외계인들을 들볶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곳이지만 그래도 그곳에 가야 같은 외계인들끼리 만날 수 있으니, 가기 싫어도 열심히 가기는 한다. 학교에서 우리 외계인들은 사나운 지구인 선생님들에게 강도 높은 박해를 받는다. 하지만 외계인들은 굳세게 견디며 꿋꿋한 저항정신으로 날마다 무장한다.

여자 외계인들은 무릎이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와, 배꼽의 위치를 상상하게 할 만큼 짧은 저고리를 교복으로 입고 다닌다. 헤어스타일은 쥐 미용사가 이빨로 뜯어 놓은 것처럼 불규칙하게 단정치 않을수록 외계인답다.

남자 외계인들은 옛날 생텍쥐페리에게 들켜 버린 어린왕자 같을수록 좋다. 옷은 어쩔 수 없이 칙칙한 교복을 입고 다녀야 하지만 헤어스타일만은 선배인 어린왕자 스타일을 지키려고 무지하게 노력하고 있다. 이것도 역시 엄청난 박해를 동반한다.

우리 외계인들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뭉쳐야 산다.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로 우리만 알아듣는 방식으로 은밀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살아남아야 한다.

외계 통신 수단으로 외계의 대마왕이 휴대전화를 보내줬다. 정말 안전하고 적절한 의사소통 기구이며 사랑스러운 장난감이다. 외계인들은 휴대전화로 자기 별로 통신을 보내고 외계인들끼리 정보를 주고받는다.

휴대전화를 손 안에 꼭 감싸 쥐고 외계인 친구에게 문자를 날릴 때 지구에서 쌓인 시름이 같이 날아가고, 문자가 왔다는 진동이 신호를 보내며 옆구리를 간질거릴 때 외계인들은 반가워 죽는다. 우리 외계인들은 하루를 문자로 시작해서 문자로 마무리한다. 하루에 문자를 100통쯤 보내고, 200통쯤 답장이 왔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우리에게 이토록 중요한 휴대전화를 지구인인 엄마 아빠는 영 못마땅해한다.

간혹, 엄마 아빠는 내가 문자를 보낼 때 내 엄지손가락의 재빠른 속도를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우리는 수업시간 틈틈이 외계인 긴급속보를 주고받고, 무료하고 졸리는 시간에서 휴대전화로 서로를 구해내 주기도 한다.

아주 중요한 전달사항이 왔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문자를 날린다.

“얄루 수업시간 조낸 지루하셈ㅋㅋㅋ아 쉬는시간에 학주가 핸폰 검사한댕ㅠ_ㅠ저번에도 담탱한테 걸려서 엄마 소환왔는뎅ㅠㅠ 아흑 쉬는시간에 체육복에 핸드폰 숨겨야징ㅋㅋㅋㅋ”

빠른 속도로 문자를 날리다가 딱, 걸리고 말았다. 휴대전화 압수. 어찌할꼬…. 이날부터 나는 엄청난 공황상태에 빠졌다. 집에서 리모컨이라도 눌러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데 엄마는 아주 고소하다고 웃는다. 우울한 나는 식구들이 다 잠든 시간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살금살금 엄마 방에 가서 엄마 휴대전화를 몰래 빌렸다.

캄캄한 거실에 혼자 앉아 휴대전화 폴더를 열었다. 액정 불빛이 환하게 내 얼굴을 비추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히후 이번에 새로 나온 핸드폰 봤냥ㅠ_ㅠ 짱이뻐!!!!!!!!! 아진짜 사고 싶다ㅋㅋㅋㅋ아 이제 한달 동안 엄마를 졸라야겠삼꺄훌ㅋㅋㅋㅋ”

“엄마가 이번 시험 80점 못 넘으면 핸드폰 압수래ㅠ_ㅠ어흑ㅋㅋㅋㅋ아빠는 90점 넘으면 핸드폰 새로 사준대따∼야호!!!! 랄랄라라∼∼∼ㅋㅋㅋㅋ”

화장실을 가려고 나온 엄마에게 들켰다. 휴대전화를 뺏기고 내 방으로 혼자 들어오는데 등에 대고 엄마가 말했다.

“어이구, 저 외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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