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87주년]자율-관용-책임 작동하는‘소프트웨어 정치’로

  • 입력 2007년 3월 31일 0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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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2월 19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와 함께 한국 사회는 민주화와 산업화로 상징되는 ‘1987년 체제’를 넘어 선진국 진입을 위한 도약을 모색해야 한다. 향후 5년간 ‘한국호(號)’를 이끌게 될 새 정부는 ‘선진화’를 향한 탄탄대로를 닦을 책무를 갖고 있다. 그러나 ‘3류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한 한국호의 앞날은 밝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치 영역도 구각을 벗고 ‘일류’로 환골탈태할 수 있을 것인가.》

“청와대가 주도하는 상명하달식 정책결정 구조, 의회정치의 취약성 등을 보면 대통령만 바뀐다고 해서 한국 정치의 선진화를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5년 후 한국 정치의 미래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

올 대선을 통해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정치 부문이 ‘3류’라는 오명을 씻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선거에서의 승리에 집착하는 정치권의 풍토를 바꾸지 않는 한 정치가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는 양상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2년 3월. 임기를 1년 앞둔 A 대통령은 권위를 상실한 지 오래고 계속되는 정쟁 속에 국민도 지쳤다. A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국정 100대 과제를 야심 차게 추진했으나 ‘선택과 집중’을 못한 탓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A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20%대 후반에 머물렀다. 당정 소통 기능도 마비됐다. 18대 국회 내내 이념 문제와 정책 노선 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빚어 온 여야 정당은 국가의 미래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기(19대) 대권 경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각 주자는 저마다 통합, 선진화,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 등을 외쳤다.”

박철희 교수는 5년 뒤 한국 정치의 모습을 이렇게 예상했다.

특히 그는 입법기관의 후진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의회는 일천한 역사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국정 운영의 한 축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회가 입법과 예산 심의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정쟁의 장’으로 스스로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다소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김 교수는 “한국 정치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주로 각종 선진 정치제도 도입 등 ‘하드웨어’적 측면에 몰두한 반면 정작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은 ‘소프트웨어’적 정치”라고 말했다.

그는 자율과 관용, 책임성 부재를 한국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꼽았다.

“정당정치, 의회정치가 정상화되지 않는 것은 자율성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상생과 관용이다. 87년 체제 후 참여가 폭발했지만 책임은 따르지 않았다.”

이런 세 가지 축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야 한국 정치의 선진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올해 대선은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게 봐야 한다. 유력 대선주자 진영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의원 ‘줄 세우기’가 나타나고 일부 주자는 특정 지역 중심의 대선 행보를 하고 있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국정 운영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또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통합과 비전을 강조하지만 5년 후 한국 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조홍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모두 통합을 말하지만 어떤 통합을 말하는지가 분명치 않다. 리더십 스타일 측면에서의 통합 이미지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우유부단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각 대선주자가 자신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해 솔직히 밝힐 필요가 있다. 표를 얻기 위해 자신의 정책 노선을 속이는 것은 결국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불평등이 심화되더라도 경제 성장과 효율성을 주장할 것인지, 경제 성장에 다소 제약이 있더라도 불평등 심화를 막는 정책을 택할 것인지 등을 자신 있게 밝혀 국민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정치분야 자문교수단이 본 한국 정치의 도전과 과제

△강정인 서강대 정외과 교수

“화합형 민주주의를 이뤄야 한다. 그 첫걸음으로 연고주의처럼 각자 결합되어 있는 진보와 보수가 함께 모여야 한다. ‘공존’은 진보와 보수를 떠난 중립적 개념이다.”

△곽진영 건국대 정외과 교수

“비례대표 비율을 대폭 늘리면 국회가 지역이나 이념 문제에 크게 얽매이지 않으면서 다양한 정책을 놓고 토론하는 민주주의의 장이 될 수도 있다.”

△김영태 목포대 정치미디어학과 교수

“한국 정치의 지역주의는 그 내용이나 형태가 자꾸 변하고 있다. 그 안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부분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은경 여성개발원 전문연구원

“국민정서법이 판을 치는 것은 곤란하다. 각 정치세력이 서로의 차이를 존재하는 ‘톨레랑스(관용)’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남궁곤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

“우리나라는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진보와 보수 이분법적으로 재단해 비생산적인 논쟁만 낳는다. 이념은 분화시켜 유기적으로 분석하고 선진화, 정보화, 개방, 복지 등 시대적 트렌드는 국민 합의를 통해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는 도구로 써야 한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의회의 기능이 활성화돼야 한다. 예산심의와 의원 입법 등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야 정치 선진화의 초석을 닦을 수 있다.”

△이연호 연세대 정외과 교수

“지역과 인물 중심으로 정당이 움직이는 게 문제다. 이념에 입각한 정당정치를 확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임성호 경희대 정외과 교수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진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여당 위에 군림할 경우 당-정-청의 협력관계는 유지되기 어렵다. 대통령은 당을 존중하면서 행정부와의 관계를 조율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

“개헌은 포괄적 문제를 담아 최소한 2, 3년 동안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결론을 내는 것보다 중요하다. 이를 감안해 개헌 일정표를 잡아야 한다.”

△조홍식 숭실대 정외과 교수

“사회 가치관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가 필요하다. 정치권이 경제성장이 우선이냐, 불평등 해소가 우선이냐 등에 대한 투명한 노선과 정책을 제시하고 국민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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