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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3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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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이 나쁘다는 데에는 반대할 사람이 없다. 표절은 결국 도둑질인 까닭이다. 하지만 좀 더 생각을 앞으로 당겨 보자. 도둑질이란 ‘내 것’이라는 울타리가 생긴 다음에야 통하는 개념이다. 한강의 돌을 가져왔다 해서 ‘훔쳤다’며 비난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개인 소유의 개천에서 수석(水石)을 주워 왔다면, 이는 절도죄로 처벌받는다.
표절도 그렇다. 표절은 개인 중심 문화의 산물이다. 옛날 작품일수록 저자를 알기는 어렵다. 구지가(龜旨歌)의 작가는 누구일까? 밀로의 비너스를 만든 작가는? 사실, 이런 물음은 별 가치가 없다. 그 당시에는 ‘누가’ 창작했다는 사실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을 만든 후에도 만든 이의 이름을 딱히 정하거나 적지 않았던 거다.
아무리 위대한 성과도 인류 역사로 보면 거대한 산에 돌 하나 더 얹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창작은 이미 있었던 것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인기 끄는 손수제작물(UCC) 동영상은 대부분 이미 있던 콘텐츠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를 표절이라고 볼 수 있을까? 더구나 동영상을 보는 사람들은 만든 이가 누구인지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UCC는 개인이 만들었지만 누리꾼 전체의 집단 창작물이며 소유물처럼 쓰인다. 이 점에서 현대 문명은 점점 고대 문화를 닮아간다. 지식을 공동 소유하려고 하고 저자보다는 작품 자체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저작권과 표절 논란은 문명 흐름을 거꾸로 가는 측면이 있다. 저작권료 때문에 많은 작품과 아이디어가 다른 창작의 소재로 쓰이지 못한다. 다른 이가 가꾸고 가지 쳐 더 크게 만들기를 바랄 수 없는 지식은 문명을 가난하게 만들 뿐이다. 저작권에 맞서 많은 누리꾼이 반기를 드는 이유다.
하지만 자신이 경력을 쌓고 출세를 하기 위한 표절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는 남이 차지한 냇가의 돌을 훔쳐서 자기가 이득을 보려는 얄팍한 짓일 뿐이다. 정의를 다잡으려면 냇가의 돌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냇가의 ‘원래 주인’이 과연 있는지 짚어 보는 일도 필요하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모든 창작은 표절이다. 표절 문제를 해결할 길은 개인의 권리를 넘어 문화 발전의 측면에서 생각할 때 비로소 열릴 터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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