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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26일 20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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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잇따라 제기되는 대학 교수들의 논문표절 의혹이 학문적 관심사에서 비롯되기 보다는 총장 선거, 보직 배정, 교수 간의 갈등, 교내 구성원간의 불협화음 때문에 불거지는 경우가 많다.
또 제기된 표절 의혹이 '폭로전'의 양상으로 치달아 건전한 학문적 검증 및 토론, 엄정한 연구윤리를 통한 발전의 계기가 되기보다는 학문의 발전을 저해하는 안타까운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문제 제기 배경부터 대립=지난해 8월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논문 표절 의혹으로 낙마한 이후 표절 문제는 학계에서 '양날의 칼'이 됐다. 잘못된 연구 관행을 반성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지만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로도 이용돼 파벌과 음모 등 학계의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총·학장선거가 학내 구성원으로 직선으로 치러지면서 상아탑에서 표를 얻기 위한 '정치판'의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상대 후보의 약점을 찾아 폭로하거나 보직에서 소외당한 교수가 상대의 치부를 들추는 일이 적지 않다. 교수 임용에서 떨어진 뒤 투서나 제보 등을 통해 임용된 교수의 표절 사실을 폭로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해마다 1, 2월 교수 채용시기가 되면 100여 건의 투서나 제보를 받곤 하는데 최근 표절에 관련된 제보가 점점 늘고 있다"고 밝혔다.
논문지도 과정에서 마찰을 빚은 대학원생이 지도 교수의 표절을 폭로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총장의 책에서 표절 부분을 밝혀내 학습권 침해에 대한 소송을 낸 사례도 있다.
전문가들은 표절을 공개적으로 또는 학문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통로나 의지가 부족해 이 같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많은 대학이나 학회, 교육 당국은 표절 의혹을 건전하게 다룰 위원회를 가지고 있지 않다. 대부분 표절 의혹은 해당 사안만 종결되면 유야무야돼 학문적으로 교훈을 남기지 않거나 법적인 다툼으로 끝이 난다.
아주대 독고윤(경영학부) 교수는 "표절 문제에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이 제기된 표절 문제를 음모론 등으로 몰아가 표절의 본질이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며 "표절 문제를 학문적으로 공론화하고 토론하는 장을 상설화해야 연구윤리가 확립된다"고 말했다.
▽학계의 파벌문화=표절 폭로전은 학계의 파벌 문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교수 임용과정에서 자신이 유학한 대학 출신이나 같은 지도교수 밑에서 공부한 사람을 추천하고 이를 통해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한국 학계의 관행이다. 특정인의 강력한 추천에 힘입어 임용된 사람은 그 사람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고 공동저작 논문을 양산하면서 세력을 다져나간다.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임용과정에서 교수들 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이 표절 의혹 제기로 표출되기도 한다"며 "교수들이 자기가 추천한 사람이 임용되도록 로비하는 경우가 흔하다"
일부 교수들이 기존 논문을 쪼개거나 덧붙여 제출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제자의 논문을 재활용해 논문을 쓰거나 제자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더라도 이런 풍토에선 내부 고발자가 나오기 힘들다. 여기에 교수 사회의 성과중심주의까지 겹쳐 짜깁기를 하거나 급조된 논문이 나오더라도 서로 봐주기 의식이 있으면 아무런 제어를 받지 않게 된다.
학계의 표절은 대중문화계의 표절과 달리 일반 대중에 의해 표절 논란이 제기될 개연성이 거의 없다. 전문적인 학문 분야에선 내부에 제어 장치와 근절 의식이 없는 한 표절은 사라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학문적 발전도 기대하기 힘들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봉관(인문사회과학부) 교수는 "성과를 위해 실패할 가능성이 없는 안전한 연구나 미흡한 연구를 서둘러 마무리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이는 표절 이상으로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오 인정해야=대학에서 제기된 표절 의혹에 대해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당사자들이 표절 의혹을 교수 집단 간의 정치적 대립으로 생각할 뿐 윤리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학 교수는 "제자의 시 도용 의혹이 제기되자 '내가 미쳤었나 보다'라며 잘못을 시인한 마광수 연세대 교수는 용감한 편에 속한다"며 "대부분 교수가 연구윤리 부정에 대해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어 후학들에게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음해성 폭로전의 악순환이 계속되면 표절에 대한 기준이 확립되지 않아 학계가 정화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상처만 입어 학계가 황폐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고려대 강선보(교육학과) 교수는 "서로 다른 표절기준으로 잘잘못을 따지고 논란을 빚기 보다는 정부나 학회 차원에서 통합 가이드라인과 검증 절차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인철 기자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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