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고 영아’ 엄마는 프랑스인 아내

  • 입력 2006년 8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의 한 빌라 냉동고에서 숨진 채 발견된 두 갓난아이의 어머니가 집주인 C(40) 씨의 두 아들(11, 9세)의 어머니와 동일인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C 씨의 부인 V(39) 씨를 이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방배경찰서는 7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두 갓난아이와 C 씨의 두 아들 유전자(DNA)를 비교 분석한 결과 이들 4명의 유전자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경찰은 이 빌라에서 수거한 칫솔에서 C 씨의 두 아들 유전자를, 귀이개에서 모계(母系) 유전자를 확보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

경찰 관계자는 “귀이개에서 확보한 유전자가 두 아들과 숨진 갓난아이들의 어머니 유전자로 확인된 만큼 V 씨가 이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말했다.

6월 29일 휴가차 프랑스로 출국한 C 씨 부부는 현재 파리에서 승용차로 2시간 거리인 앵드르에루아르 주 투르에 있는 자신의 집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 씨는 휴가가 끝나는 28일 예정대로 입국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지만 실제 입국할지는 미지수다.

경찰은 C 씨 부부의 조기 입국을 프랑스 정부에 요청하고 있지만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는 범죄인인도조약이 아직 발효되지 않아 조기 입국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경찰은 C 씨가 입국하지 않으면 국제형사사법공조협약에 따라 프랑스 당국에 수사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한편 경찰은 V 씨가 2003년 12월 한국의 한 산부인과에서 자궁적출수술을 받아 임신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 때문에 갓난아이들이 숨진 시점이 최소 2년 7개월 전일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두 아들과 숨진 갓난아이들의 어머니가 V 씨가 아닌 제3의 인물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태. 경찰은 두 갓난아이가 일란성 쌍둥이는 아니지만 이란성 쌍둥이인지, 시차를 두고 태어난 형제인지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DNA 분석 결과 두 갓난아이의 아버지로 밝혀진 C 씨는 지난달 23일 자신의 집 냉동고에서 비닐봉지에 싸인 갓난아이 시신 2구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위의 이미지 클릭후 새창으로 뜨는 이미지에 마우스를 올려보세요. 우측하단에 나타나는 를 클릭하시면 크게볼 수 있습니다.)


■‘엽기적 사건’ 더 커진 의혹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분석 결과 숨진 갓난아이들의 어머니가 집주인 C 씨의 부인 V 씨가 유력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아버지로 확인된 C 씨와 사건의 관련성, 갓난아이들의 사망 시기 등은 오히려 더 큰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영아들은 언제 숨졌나=국과수는 갓난아이들을 부검했지만 사망 시기와 사인을 밝히지 못했다.

사망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한 가닥 실마리는 V 씨가 2003년 12월 자궁적출 수술을 받아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점. 경찰의 추정대로 V 씨가 범인이라면 범행 시기는 최소 2년 7개월 전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당시 C 씨 부부는 서래마을에 살지 않았다. 이들은 2002년 8월 입국한 뒤 서초구 방배동의 한 빌라에 살다가 지난해 8월 이 마을로 이사 왔다.

그렇다면 숨진 아이들의 시신도 그때 함께 옮겨 온 것인지 의문이다. 더욱이 C 씨 집 베란다 등에서 발견된 핏자국이 양수 혹은 태반에서 나온 진액으로 추정되면서 이사 뒤 뒤늦게 아이들을 옮겨 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영아들 왜 죽였나=불륜 관계가 아닌 정상적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왜 유기했는지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C 씨 부부가 아무리 원치 않는 출산이었다고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이 굳이 아이를 죽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V 씨가 C 씨 몰래 아기를 낳아 죽였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산후 우울증이나 C 씨와의 불화가 원인일 수 있다는 추정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서래마을 경비원은 “V 씨가 거의 외출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숨진 두 갓난아이의 탯줄이 조잡하게 끊긴 점으로 미뤄 이들이 병원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으로만 추정할 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숨졌는지’ 밝히지 못하고 있다.

▽C 씨는 영아 유기를 몰랐나=C 씨는 최근 주한 프랑스대사관을 통해 “나는 갓난아이들의 아버지가 아니다”라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주장했다.

경찰도 C 씨가 신고자라는 점 때문에 여전히 이 사건에 직접 관여했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부인이 출산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더욱이 프랑스로 휴가를 떠났다가 도중에 입국해 출국 직전 간고등어를 주문했다는 것도 미심쩍다.

C 씨는 경찰에서 간고등어를 냉동고에 넣다가 숨진 갓난아이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빌라 경비실에 배달된 간고등어를 이틀 동안 찾아가지 않다가 반품한 뒤 다시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참고인인 C 씨의 신분이 피의자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의 갈지자 수사=이 사건은 경찰의 초기 발표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당초 경찰은 빌라 출입문 보안카드 관리를 맡았던 C 씨의 프랑스인 친구 P(47) 씨와 이 집의 필리핀인 가정부 L(49·여) 씨, C 씨 집 앞에서 이웃에게 목격됐다던 10대 백인 소녀들을 용의선상에 놓고 수사했다.

하지만 C 씨가 다시 프랑스로 출국한 직후 갓난아이들의 아버지가 C 씨로 확인된 데 이어 아이들의 어머니도 V 씨가 유력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C 씨 부부가 수사를 완강히 거부하거나 제3국으로 출국할 경우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어 강제 입국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