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인천·경기 무더기 급식사고…당국 초동대응 미흡

  • 입력 2006년 6월 23일 03시 01분


폐쇄된 교내식당서울시 14개 중고교에서 집단 식중독 의심 증세가 나타난 가운데 22일 급식 중지명령이 내려진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 식당 주방이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폐쇄된 교내식당
서울시 14개 중고교에서 집단 식중독 의심 증세가 나타난 가운데 22일 급식 중지명령이 내려진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 식당 주방이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인천 경기 등지의 중고교에서 사상 최대의 급식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전국 93개 초중고교생 7만여 명이 당분간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사 먹는 것으로 급식을 해결해야 하는 등 ‘급식 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이 가운데 급식체계 전반에 허점이 드러나 교육·보건 당국의 급식사고 대응 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초기 대응 미적미적=교육인적자원부의 학교급식실시 지침에 따르면 일선 학교에서 식중독으로 의심되는 설사 환자가 2명 이상 발생하면 관할 교육청과 보건소에 보고하도록 규정돼 있다.

교육청은 보고받은 다음 날부터 해당 학교의 급식을 중단시키고 보건소에 음용수, 음식물 등에 대한 검출 및 역학검사를 요청해야 한다.

16일 오후 3시 서울 노원구 염광중·고교와 염광여자정보교육고에서 학생 25명이 식중독으로 의심되는 증상을 보이자 학교 측은 서울시교육청과 노원구 보건소에 환자 발생 사실을 보고했다.

시교육청은 곧바로 직원 2명을 파견해 보건소의 역학검사에 필요한 행정 절차를 지원하고 17일부터 3개교의 급식을 중단시켰다. 교육부에도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시교육청은 급식업체인 CJ푸드시스템에 재발 방지를 위한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식재료의 유통망이나 오염 원인을 파악하는 데도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해당 보건소는 급식사고를 19일에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보고했다.

시교육청은 “열흘 정도 걸리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 식중독이 학교급식 때문인지 식수 등에 의한 것인지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시정명령을 내릴 경우 더 큰 혼란이 발생한다”고 해명했다.

이후 21일 오전부터 서울의 숭의여중·고교, 중앙여중·고교, 경복여고, 경복여자정산고 등 6개교에서 식중독 발생 사실을 시교육청에 보고했다.

숭의여중·고교는 123명, 경복여고와 경복여자정산고는 63명이나 됐고 “전날 급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는 것이 해당 학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제야 시교육청은 보건소에 역학검사를 의뢰하고 이들 학교의 급식을 중지시켰다.

21일 밤 시교육청은 CJ푸드시스템이 급식을 제공하는 나머지 31개 학교장에게 전화를 걸어 식중독 의심 증세를 보이는 학생이 있으면 모두 보고하도록 조치했다.

이튿날인 22일 아침부터 서문여중·고교 등 5개교에서 집단식중독 보고가 속속 들어오자 시교육청은 오전 11시 부랴부랴 해당 업체가 급식을 제공하는 모든 학교에 급식 중단을 명령했다.

▽식약청 보고 왜 늦었나=식약청 관계자는 “보건소에서 출동한 직원이 가검물을 채취하고 소변검사를 하는 등 역학조사를 하느라 보고가 늦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노원구 보건소는 급식사고가 처음 발생한 16일 다음 날이 주말이어서 월요일인 19일 낮 12시 무렵 식약청에 보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는 서울 동작구 숭의여중·고교가 21일 학생들의 식중독 증세 호소가 잇따르자 바로 보건소에 알렸고 보건소는 다음 날 식약청에 보고한 것과 대조적이다.

따라서 이번 급식사고가 단순 식중독 사고가 아니라 전염성 바이러스가 원인일 경우 전염병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는데도 보건소 측이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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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학생들 “돼지불고기 먹었다”▼

이번 집단 급식사고의 원인에 대해 보건당국은 바이러스나 세균 감염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체로 식중독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대장균이다. 따라서 집단급식 위생관리에는 식자재의 제조 유통 보관 조리과정에서 바이러스와 세균 감염 차단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나 현재의 집단급식 시스템은 감염에 무척 취약한 구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급식업체들은 대개 식자재 납품업체로부터 음식재료를 받는다. 이때 중금속과 잔류농약, 식품첨가물 등 전반적인 품질검사를 진행해 변질된 것으로 보이는 식자재는 모두 ‘퇴출’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쓰는 식자재가 부패가 쉬운 육류와 생선 등이다.

특히 이번에 급식사고가 발생한 학교의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돼지불고기를 먹었다”고 털어놓으면서 돼지고기 품질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돼지고기의 경우 도축에서부터 각 학교로 배송되는 데 걸린 시간은 3, 4일 정도다. CJ푸드시스템은 도축에서 가공과정을 거쳐 배송까지 위생적으로 처리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모든 단계에서 바이러스나 세균 등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한 대비는 취약하다. 우선 냉동육의 경우 도축과정에서부터 바이러스 등에 감염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를 확인하기 힘들다.

더욱이 식자재 납품업체 대부분이 영세해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고, 대형 급식업체에서도 기계적으로 자신들의 매뉴얼에 따라 점검을 하는 데 그친다.

식자재가 급식업소로 배송되는 과정이나 조리사가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감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다만 여러 학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비춰 이번에는 조리과정에서의 감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학교나 보건당국이 급식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이런 과정을 일일이 체크할 수 없다.

결국 안전하고 위생적인 급식은 전적으로 급식업체의 양식과 자질에 맡겨져 있는 셈이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학부모들 “도시락파문 생생한데 또…”▼

학생과 학부모들은 대기업과 교육 당국의 무책임한 태도에 분통을 터뜨렸다. 급식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물으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경기 용인시 홍천고 학부모 김모(48·여) 씨는 “대기업이 납품한다고 해서 믿고 맡겼는데 어떻게 했기에 이런 사고가 났느냐”며 “교육청과 학교의 더욱 철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학부모(46·여)도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CJ푸드시스템의 경우 직접 음식을 만들지 않고 대부분 하청을 준 뒤 자기 업체의 이름만 달아 공급해 오다 사고를 일으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며 “당국에서 진상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현경 참교육학부모회 인천지부장은 “사고가 일어난 학교는 대부분 위탁급식을 하고 업체는 영리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위생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며 “교육 당국에도 공동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학부모들은 사고 자체를 덮으려던 학교의 자세에 불만을 나타냈다.

자녀가 인천 청량중학교에 다니는 김모(40) 씨는 “어제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온 아이가 밤새 설사와 구토, 복통 증세를 호소해 병원에 데려갔다”며 “학교에 항의전화를 했더니 다른 데 알리지 말고 조용하게 있어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다른 학부모 윤모(43) 씨는 “어제 아이가 점심을 먹은 뒤 학교 보건실에 구토와 복통 증세를 호소했더니 소화제를 줬다”며 “오늘에서야 ‘내일부터 급식을 하지 않으니 도시락을 싸오라’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는 누리꾼의 비판이 이어졌다. ID ‘꿈을 찾는 사람’은 “지난해 만두파동에 이어 대형 사고가 터졌다”며 “음식을 가지고 장난치는 기업은 과감하게 매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수원=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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