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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6월 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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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씨가 혼자 살던 집에는 시각장애인용 지팡이가 주인을 잃은 채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복도에서 발견된 손 씨의 구두 앞부분에는 페인트 자국이 남았다. 그가 몸을 던지기 직전 난간에 올라서려 발버둥치며 남긴 마지막 흔적이다.
손 씨는 14년 전 유전성 안과 질환으로 시력이 악화됐다.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손 씨는 경북 울산의 유화공장을 그만둔 뒤 31세 때부터 전국을 떠돌며 노숙을 시작했다.
그는 고물수집상 등을 전전하며 8년여를 보내다 “이렇게 내 삶을 마감해선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2001년 39세라는 늦은 나이에 서울의 한 맹아학교에 입학해 침술과 안마를 배웠고 2003년에는 안마수련원에 들어가 2년 만인 지난해 안마사 자격증을 땄다.
안마수련원 동기들과 테니스를 즐겼고 지난해 말에는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창업 교육을 받을 정도로 삶의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출장 안마사로 일하며 한 달에 버는 20여만 원으로는 13평짜리 아파트 월세를 내기도 빠듯했다.
손 씨는 점점 지쳐갔다. 낮에 희미하게나마 보이던 눈도 어두워져 갔다. “완전히 안 보이면 죽고 싶을 것”이라고 주변 사람에게 넋두리를 했다.
그는 지난달 25일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는 것은 위헌이란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시각장애인은 다 죽게 생겼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과 떨어져 살며 “홀어머니를 모시고 싶지만 어머니가 나를 부양해야 할 지경이니 죄스러운 마음 뿐”이라며 우울해 했던 손 씨.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시각장애인들의 반발은 더욱 커졌다.
대한안마사협회는 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시각장애인의 직업 선택 자유가 시각장애인들의 생존권보다 어떻게 우위에 있느냐”며 헌재 결정을 비판했다.
국립서울맹학교 고등부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날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서 집회를 열고 장애인 직업교육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국시각장애학교장협의회도 이날 헌재 앞에서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인 안마업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오후 시각장애인들이 고공 시위를 벌이고 있는 서울 마포대교 남단 아래 한강 둔치에는 손 씨의 분향소가 마련됐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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