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법원, 화이트칼라 범죄 양형기준 확정

  • 입력 2006년 2월 27일 16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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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칼라 피고인이 뇌물 1000만 원을 받았다. 이 피고인은 어떤 처벌을 받을까.'

정답은 없다. 하지만 이 피고인이 창원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면 징역 2년 안팎의 실형을 받게 된다. 운 좋게도 집행유예를 받을 수도 있지만 선고유예는 꿈도 꾸지 못할 것 같다.

창원지법(법원장 김종대·金鍾大)은 27일 공무원, 경제인 등 화이트칼라의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양형(量刑) 기준'을 전국 법원 가운데 처음으로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다. ▶본보 2월15일자 A12면 참조

이에 따라 초범이거나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는 이유, 또는 잘못을 반성한다는 이유로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로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용훈(李容勳) 대법원장이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천정배(千正培) 법무부 장관도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고 지적한 가운데 마련된 양형기준은 다른 법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창원지법은 이날 오전 본원과 지원 소속 70여 명의 판사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김 법원장 주재로 2시간 동안 회의를 열어 '형사실무개선팀(팀장 문형배·文炯培부장판사)'이 만든 '화이트칼라 범죄 양형기준'을 채택했다. 이 기준은 곧바로 판결에 적용된다.

양형기준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가능한 선고유예나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징역형)을 선고함으로써 '솜방망이 처벌'을 근절하고 동일 범죄에 대해 형량을 비슷하게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기준은 뇌물죄, 업무상 횡령 배임죄, 배임수재죄 등 금액을 기준으로 경중을 가릴 수 있는 범죄에 대해서는 금액을 기준으로 최소 형량을 정하고, 가중 및 감경 요인을 반영할 수 있는 조건을 명시했다.

그러나 증뢰죄(뇌물을 준 죄)의 경우 강력한 로비력을 가진 단체나 법인 등 수뢰자(뇌물을 받은 사람)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거나, 공무원의 약점을 잡아 돈을 준 피고인에게는 실형이 선고된다.

또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죄 피고인은 경쟁 회사나 국가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면 초범이라도 실형과 벌금형을 함께 받게 된다.

창원지법 황용경(黃容瓊) 수석부장판사는 "양형기준은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시행하면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지만 전체 법관의 의견수렴과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창원지법의 1심과 항소심에서는 잘 지켜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법원장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온정주의 판결이 사법불신의 주된 원인이었다"며 "양형기준은 국민이 수긍하는 보편타당한 판결을 하기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창원지법은 1월 9일 형사실무개선팀을 꾸리고 이달 13일 초안을 만들어 21일 형사 담당 판사의 회의를 열어 이 기준에 대해 논의했다.

창원지법은 이날 회의에서 양형기준 외에 △불구속 원칙 강화 방안 △소송 당사자의 재판장 조기 대면 방안 △판결문 간이화 방안 등도 마련했다.

한편 검찰정책자문위원회(위원장 허영·許營 명지대 석좌교수)는 이날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서 '바람직한 구속 기준 모색을 위한 공청회'를 가졌다. 이 공청회는 주로 불구속 수사 원칙 확대의 적절성과 엄격한 양형기준 확립의 필요성 등에 대해 논의했다.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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