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대신 물통… 기막힌 시운전

  • 입력 2006년 2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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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통 싣고 시운전하는 대전지하철.’ 3월 개통 예정인 대전지하철이 선거법 문제로 무료 시승이 불가능해지자 승객 대신 물통을 싣고 시운전을 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승객을 무료 시승시키는 것은 선거법에 저촉된다고 밝혔다. 대전=연합뉴스
‘물통 싣고 시운전하는 대전지하철.’ 3월 개통 예정인 대전지하철이 선거법 문제로 무료 시승이 불가능해지자 승객 대신 물통을 싣고 시운전을 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승객을 무료 시승시키는 것은 선거법에 저촉된다고 밝혔다. 대전=연합뉴스
개통 한 달가량을 앞두고 시운전 중인 대전 지하철이 물통을 싣고 달리고 있다.

승객을 태우고 달려야 할 지하철에 물통을 실은 것은 선거법 때문이다.

대전시 선거관리위원회가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승객을 무료 시승케 할 경우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해석을 내리자 대전 도시철도공사가 안전 점검을 위한 고육책으로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시운전으로 지하철 안전 점검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7일 대전시와 대전 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대전지하철은 다음 달 중순 지하철 1호선 1단계 구간 개통에 맞춰 지난달 말까지 안정성을 테스트하는 시운전을 한 데 이어 이달부터는 영업 시운전을 진행 중이다.

영업 시운전은 지하철 운영 전반을 점검하는 마지막 단계다.

이 때문에 승객들이 역에서 표를 사고 승하차하는 것은 물론 화장실 등 부대시설을 이용하는 것까지 실제와 같은 상황에서 시험이 이뤄져야 한다.

도시철도법 운행 규칙도 지하철 개통 전 60일 이상 시운전을 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는 영업 시운전 기간 연인원 1만5000명을 태워 무료 시승할 기회를 줄 계획이었으나 선거법 때문에 제동이 걸렸다.

대전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작위로 많은 시민을 무료 시승케 하면 재선에 도전하는 염홍철(廉弘喆) 시장의 치적을 홍보하는 것으로 이는 곧 기부 행위로 볼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놨기 때문이다.

또 유권자가 아닌 어린이 등 미성년자를 태우는 것도 간접 선거운동이 될 수 있다며 시승 불가 입장을 밝혀 결국 시와 도시철도공사는 시민 초청 시승 행사를 모두 취소했다.

이 때문에 고심 끝에 기술 시운전에 활용했던 대형 물통을 전동차에 싣고 영업 시운전을 진행하면서 승객이 가득 찼을 때를 가정한 만차 시험 때 4량으로 편성된 객차마다 최대 1.2t의 대형 물탱크 13개씩(총 16t)을 싣고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승객의 하중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승차감이나 시민들이 느끼는 불편 등 개선 의견을 들을 수 없고 매표 및 집표, 역 구내 이동 편의, 장애인 시설 점검 등도 할 수 없어 반쪽 시운전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사고 위험이 높은 출퇴근 시간 등 러시아워 때 역 구내 상황의 연출 및 점검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대전 시민단체들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에 선관위가 너무 꽉 막히게 선거법을 적용하는 것 아니냐”며 “적절한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어이없어 했다.

대전 도시철도공사 측은 “선관위의 유권 해석은 존중돼야 한다”고 전제한 뒤 “사전 선거운동으로 악용될 소지를 막으면서도 승객을 태워 시운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선관위에 다시 질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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