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을 태우고 달려야 할 지하철에 물통을 실은 것은 선거법 때문이다.
대전시 선거관리위원회가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승객을 무료 시승케 할 경우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해석을 내리자 대전 도시철도공사가 안전 점검을 위한 고육책으로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시운전으로 지하철 안전 점검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7일 대전시와 대전 도시철도공사에 따르면 대전지하철은 다음 달 중순 지하철 1호선 1단계 구간 개통에 맞춰 지난달 말까지 안정성을 테스트하는 시운전을 한 데 이어 이달부터는 영업 시운전을 진행 중이다.
영업 시운전은 지하철 운영 전반을 점검하는 마지막 단계다.
이 때문에 승객들이 역에서 표를 사고 승하차하는 것은 물론 화장실 등 부대시설을 이용하는 것까지 실제와 같은 상황에서 시험이 이뤄져야 한다.
도시철도법 운행 규칙도 지하철 개통 전 60일 이상 시운전을 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는 영업 시운전 기간 연인원 1만5000명을 태워 무료 시승할 기회를 줄 계획이었으나 선거법 때문에 제동이 걸렸다.
대전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작위로 많은 시민을 무료 시승케 하면 재선에 도전하는 염홍철(廉弘喆) 시장의 치적을 홍보하는 것으로 이는 곧 기부 행위로 볼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놨기 때문이다.
또 유권자가 아닌 어린이 등 미성년자를 태우는 것도 간접 선거운동이 될 수 있다며 시승 불가 입장을 밝혀 결국 시와 도시철도공사는 시민 초청 시승 행사를 모두 취소했다.
이 때문에 고심 끝에 기술 시운전에 활용했던 대형 물통을 전동차에 싣고 영업 시운전을 진행하면서 승객이 가득 찼을 때를 가정한 만차 시험 때 4량으로 편성된 객차마다 최대 1.2t의 대형 물탱크 13개씩(총 16t)을 싣고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승객의 하중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승차감이나 시민들이 느끼는 불편 등 개선 의견을 들을 수 없고 매표 및 집표, 역 구내 이동 편의, 장애인 시설 점검 등도 할 수 없어 반쪽 시운전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사고 위험이 높은 출퇴근 시간 등 러시아워 때 역 구내 상황의 연출 및 점검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대해 대전 시민단체들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에 선관위가 너무 꽉 막히게 선거법을 적용하는 것 아니냐”며 “적절한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어이없어 했다.
대전 도시철도공사 측은 “선관위의 유권 해석은 존중돼야 한다”고 전제한 뒤 “사전 선거운동으로 악용될 소지를 막으면서도 승객을 태워 시운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선관위에 다시 질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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