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남진우]상상력이 흐르는 都市꿈꾸며

  • 입력 2005년 12월 2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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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 새로 물길이 열린 지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지금 방문객이 10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최근의 보도는 우리를 깊은 감회에 젖게 한다. 도시의 한 구역을 흐르는 작은 물줄기에 불과한 개천이 어떻게 해서 그토록 강한 자력을 발산할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해석이 덧붙여질 수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국민이 그동안 도시가 제공하는 신비롭고 마술적인 ‘꿈의 풍경’에 오래도록 굶주려 왔다는 사실이다. 국민 가운데 도시 거주자가 9할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사회로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도시는 대부분 자연과 달리 인간성을 마모시키며, 유해하고 불쾌한 소란과 자극으로 가득 찬 저주받은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겪은 압축 근대화의 폐해는 특히 삭막하고 몰개성한 도시의 형태와 구조에 전형적으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서구 근대도시의 역사가 말해 주듯이 도시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위한 공간으로 기획 창조되었고 전원이 제공할 수 없는 신비와 매혹의 장소로 평가받았다. 메트로폴리스는 인류의 오랜 유토피아적 충동의 시각적 구현물이자 진보와 풍요가 실현된 인공낙원을 향한 꿈의 육화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실제 몸담고 살고 있는 도시 현실이 이런 꿈을 종종 배반한다는 사실이다. 도시는 더럽고 악취가 나며 위험하고 억압적이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퇴로는 차단돼 있다. 생태주의자들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짐승들과 뛰놀며 자연의 순환적 질서에 동참하는 전근대사회의 대지적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지금 이곳에서 좀 더 바람직한 도시적 삶의 양상을 모색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계천 프로젝트의 성공은 단지 그것을 이끈 한 정치인의 인기에 관련된 사안이기를 넘어 ‘우리가 꿈꾸는 미래 도시의 모습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중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지적했듯이 새롭게 단장한 청계천은 단순한 과거의 복원이 아니다. 서울의 도심 한복판을 관통하는 이 개천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고 제작된 조형물의 일종이며 거기 흐르는 물은 대지에서 기원한 천연수가 아니라 현대의 산업기술과 자본의 힘으로 제공되는 정수된 물이다. 한번 청계광장에서 버들습지에 이르는 둔치 길을 따라 걸어가 보라. 점심시간 무렵의 청계천은 직장인들이 휴식을 취하는 우리 시대의 센트럴파크이고 야경이 빛나는 한밤의 청계천은 젊은 연인들의 디즈니랜드로 화한다. 청계천을 장식하고 있는 다양한 조각과 벽화 분수 등을 보고 있노라면 도시가 그 자체로 하나의 극장이며 행인은 도시적 파노라마를 관람하며 소요하는 관객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미래도시라고 하면 나의 경우 떠오르는 것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의 라데팡스이다. 흔히 파리를 ‘19세기의 수도’라고 하듯이 그 도시는 1800년대 중반 이미 현재의 모습을 완성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라데팡스는 고풍스러운 바로크식 석조 건물이 즐비한 파리의 일반적 모습과는 전혀 동떨어진 외양을 하고 있다. 전후 경제개발의 가속화와 인구 증가에 맞춰 개발된 이 신도시는 세계적 기업들이 입주한 비즈니스 지역 외에 쇼핑센터, 주택, 공원 등이 조화롭게 편성돼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21세기형 자족도시’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모든 도로와 지하철, 주차장을 지하에 설치한 복층 구조는 미래도시를 향한 건축적 상상력의 승리를 보여 주고 있다. 이 대규모 건설의 화룡점정이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에서 건립한 그랑다르슈(대형 아치)로서 개선문과 샹젤리제와 루브르박물관을 잇는 공간적 축이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역사적 기념물이 되어 주고 있다.

프랑스에서 라데팡스 건설이 본격화될 무렵 한국에선 여의도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산만하고 조잡하며 무성격한 건물들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 추진된 몇 개의 신도시에서도 이런 시행착오는 변함없이 되풀이되어 왔다. 그렇다면 청계천 복원에서 만날 수 있었던 변화의 조짐이 우리 사회에서 도시를 재편성하는 공간혁명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까. 이 땅에 자본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도시가 건설될 수 있는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을까.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 청계천은 우리 모두에게 도시 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조율할 줄 아는 상상력의 필요성을 요청하고 있다.

남진우 시인·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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