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10>게놈

  • 입력 2005년 10월 29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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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에게도 개성이 있을까? 애완동물과 한지붕 아래 살아 본 사람은 그들에게도 각자의 개성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세계적 영장류 학자 제인 구달은 자신이 관찰한 침팬지들에게 이름을 지어 줌으로써 그들의 개성을 발굴해 냈다. 그렇다면 염색체에도 개성이 있을까? 다소 생뚱맞은 질문처럼 들리지만, 저명한 과학 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는 이 책에서 23쌍의 인간 염색체 각각에도 개성이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즉, 염색체마다 고유한 역사와 특성이 있고 심지어 그것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논쟁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6번 염색체의 기원과 그 위에 존재하는 IGF2R 유전자의 기능을 설명하면서, 그 유전자가 지능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어떻게 밝혀지게 되었는지도 들려준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인간 게놈의 염기서열은 민간기업과 국제 공동연구팀 간의 치열한 경쟁의 결과로 이미 2000년에 그 실체가 공표됐다. 하지만 그 염기서열이 과연 신체 내에서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아는 게 별로 없다. 저자는 염기서열 해독이 다 완성되기도 전에 그 다음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 즉 유전자 기능에 관한 책을 쓴 것이다.

만일 같은 주제에 대해 웬만한 유전학자가 책을 썼다면 틀림없이 아주 딱딱한 논문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리들리는 탁월한 과학해설가답게 유전학 책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 냈다. 그는 정확한 유전학 정보뿐만 아니라 그 정보를 얻기까지 과학자들이 펼친 지난한 연구과정, 그것에 얽힌 재밌는 에피소드,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슨 유전자’를 발견했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입체적으로 엮어 내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기본적으로 최근의 유전학적 성과들을 잘 전달하려는 목표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을 절대로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다. ‘뉴욕타임스’가 2000년에 선정한 최고의 책 10권 중에 이 ‘과학책’이 당당히 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 독자들도 벽에다 대고 설교하는 듯한 과학책을 붙잡고 하품을 참고 줄을 쳐 가며 책장을 넘기지는 않는다. 그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마찬가지다. 23쌍의 염색체 각각에 별명을 붙여 주고 그 별명을 얻게 된 과정을 역사, 철학, 심리학으로 덧입힌 이 책은 ‘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이라는 부제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과학적 게놈을 인문학적 스토리로 멋지게 포장했다. 과학 저술의 좋은 본보기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7번 염색체 위에 존재하면서 인간의 발음과 문법 능력에 영향을 주는 FOXP2 유전자처럼 2000년 이후 발견된 유전자들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리들리는 ‘게놈: 시즌 2’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 그에게만 맡기지 말고 아예 독자 스스로가 매체들을 활용해 그 부분을 채워 보는 것은 어떨까? 생물학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그런 숙제를 내도 멋질 것이다.

우리는 이제 유전자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유전자, 게놈이 뭔데 그리 난리야. 그런 걸 꼭 알아야 돼?’라고 용감하게 떠들던 시대는 이제 갔다. 자신의 교양 없음을 자랑하고 싶지 않다면 바로 이 책부터 펼쳐 보자.

장대익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학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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