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前총장 “검찰 중립의 꿈 무너졌다”

  • 입력 2005년 10월 1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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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울한 퇴임식‘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김종빈 전 검찰총장의 퇴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검찰청 강당에 모인 검찰 간부들의 표정이 착잡하다. 벽에 걸린 사진에 있는 역대 검찰총장들은 후배 검사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원대연 기자
침울한 퇴임식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김종빈 전 검찰총장의 퇴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검찰청 강당에 모인 검찰 간부들의 표정이 착잡하다. 벽에 걸린 사진에 있는 역대 검찰총장들은 후배 검사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원대연 기자

김종빈(金鍾彬) 전 검찰총장은 17일 대검찰청에서 퇴임식을 갖고 수사지휘권 파동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오후 3시 대검 15층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김 전 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 “심히 충격적인 일” “저의 충정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중립의 꿈이 여지없이 무너져” “정치적 중립과 수사 독립은 반드시 지켜내야” 등의 강한 어조로 유감을 나타냈다.

그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마련된 총장 임기를 반드시 채우겠다던 취임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아쉽고 송구스럽지만 이 시점에서 물러서는 것이 검찰조직과 검찰가족 여러분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 굳게 믿는다”고 운을 뗐다.

김 전 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심히 충격적”이라며 “구체적인 사건 처리는 정치적 시대상황에도 불구하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강정구 교수 사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의식한 듯 “남북관계가 급변한다 해도 군사적 대치라는 현실을 감안할 때 헌법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행동은 엄정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이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외부의 영향 없이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는 검찰 조직의 이기주의가 아니라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보장이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은 “정치가 검찰 수사에 개입하고 권력과 강자의 외압에 힘없이 굴복하는 검찰을 국민은 바라지 않는다”면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검찰권을 약화시키는 어떤 시도에도 단호하게 맞서 정의로운 선진 검찰의 꿈을 이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강정구 교수의 구속 의견이 소신과 일치하는가”란 질문을 받고 “소신 없는 일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불구속 확대란 구속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막자는 취지이며, 구속돼야 할 사람은 반드시 구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그는 이날 오전 10시 50분경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에서 천정배(千正培) 법무부 장관과 짧은 ‘마지막 만남’을 가졌다.

청사에 도착한 김 전 총장은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린 듯 홀가분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청사 2층 장관 집무실 입구에 도착하자 천 장관이 마중을 나왔다. 김 전 총장은 “들어갑시다”라고 말하며 천 장관의 손을 잡았다.

김 전 총장과 천 장관은 배석자 없이 대화를 나눴다. 10분 후 두 사람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김 전 총장과 천 장관은 수십 명의 취재진을 향해 서서 마지막으로 손을 잡았다. 두 사람 모두 웃음을 지어 보였으나 여전히 어색했다.

천 장관은 몇 초간 잡고 있던 김 전 총장의 손을 놓으며 “수고하셨습니다. 자 이제 가십시오”라고 말한 뒤 집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김 전 총장은 아무 말 없이 목례를 한 뒤 걸어 나왔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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